[ART TREND] 사회적 대비를 담은 거장, 래리 핑크
"렌즈 너머 계급 차이를 포착한 사진작가 래리 핑크, 생을 마감하다" 뉴욕 사회계의 대조적인 양상을 포착한 그의 카메라, 영원히 멈추다
[KtN 박준식기자] 사회적 계층 간의 갈등과 모순을 생생하게 담아낸 사진작가 래리 핑크(Larry Fink)가 82세의 나이로 펜실베니아 자택에서 별세했다. 그의 작품을 대표하던 뉴욕의 로버트 만 갤러리(Robert Mann Gallery)가 이번 주말 그의 사망 소식을 알렸지만, 구체적인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핑크는 1970년대 후반 '소셜 그레이스(Social Graces)' 시리즈를 통해 광범위한 인지도를 얻었다. 이 시리즈에서 그는 펜실베니아 동부 마틴스 크릭(Martin’s Creek)의 사바틴스(Sabatines) 가족과 뉴욕 등 여러 도시의 사회 상류층을 대비시켜 두 세계를 대조적으로 묘사했다. 이 작품들은 1979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개인전으로 전시되었으며, 나중에 아퍼처(Aperture)에서 관련 모노그래프를 출판했다.
1941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핑크는 변호사였던 버나드 핑크(Bernard Fink)와 좌파 활동가였던 실비아 캐플란 핑크(Sylvia Caplan Fink)의 자녀로 성장했다. 청소년기부터 이미지 제작에 몰두한 그는 뉴욕 뉴스쿨(New School)에서 공부하며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거리 사진작가 리제트 모델(Lisette Model)의 멘토링을 받았다.
60년에 걸친 그의 경력 동안 그는 모델의 영향을 지속적으로 인정하며, 마르크스주의자였던 어머니의 견해가 그의 예술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2011년 뉴욕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핑크는 "이러한 모순이 나의 정치적, 미학적 관점을 풍부하게 했다. 작품은 정치적이었지만 독설적이진 않았다. 친절하지는 않지만 정직하고 잔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18세가 되던 1958년,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비트 운동과 연관된 예술가 및 작가 그룹의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뉴욕으로 돌아와 1960년대 중반 앤디 워홀(Andy Warhol)의 내부 인물들을 촬영했다.
1976년까지 핑크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개발했으며, 그의 경험은 거겐하임 펠로우십(Guggenheim Fellowship) 수상으로 이어졌다. 이후 1988년에는 바드 대학교(Bard College)의 사진 교수로 임용되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중반에는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세계로 발을 넓혀 'Vanity Fair'와 'The New Yorker' 같은 잡지들의 의뢰로 폭력과 사치를 포착했다. 그의 작품은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두 컬렉션, '런웨이(Runway)'와 '바니티스: 할리우드 파티 2000–2009(The Vanities: Hollywood Parties 2000–2009)'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18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더 복싱 포토그래프(The Boxing Photographs)' 시리즈의 이미지가 전시되었을 때, 핑크는 복싱 스포츠와 그 승자들에 대한 세심한 관찰에서 비롯된 계급 의식적 관점을 공유했다. 그는 "이것은 미국의 특별함; 특별한 신체와 마음"이라고 말했다.
핑크는 나이가 들면서 더 명상적인 단계로 이행했으며, 마틴스 크릭의 집 주변 풍경을 촬영했다.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 중 하나는 블랙록의 래리 핑크(Larry Fink)를 포착한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의뢰였다. 그의 초기 이미지를 담은 전집은 powerHouse Books에서 출판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