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렉터 트렌드] 미술 시장을 뒤흔든 소송전, 저스틴 선과 데이비드 게펀의 ‘자코메티 논쟁’
거대 컬렉터들의 충돌, 현대 미술 시장의 법적 투명성을 다시 묻다
[KtN 임민정기자] 현대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들의 역할이 단순한 예술 애호가를 넘어 거대한 자본과 권력을 지닌 핵심 플레이어로 변화하고 있다. 작품 하나가 단순한 소유물 이상의 가치를 가지면서, 거래 과정은 더욱 복잡해졌고 법적 분쟁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암호화폐 사업가이자 컬렉터인 저스틴 선(Justin Sun)이 억만장자 컬렉터이자 엔터테인먼트 거물인 데이비드 게펀(David Geffen)을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면서 미술 시장이 다시금 뜨거운 논쟁의 중심에 섰다.
쟁점은 2021년 소더비(Sotheby’s) 경매에서 7,840만 달러에 낙찰된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의 조각 작품 《Le Nez》의 소유권이다. 저스틴 선은 자신이 구매한 작품이 위조된 서류와 조작된 계약을 통해 게펀에게 불법적으로 판매되었다고 주장하며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미술품 거래의 불투명한 구조, 그리고 분쟁의 시작
저스틴 선은 소더비 경매에서 《Le Nez》를 낙찰받은 후, 미술 컨설턴트 숑 지한 시드니(Xiong Zihan Sydney)에게 작품 판매를 위한 협상을 맡겼다. 하지만 법원에 제출된 소장에 따르면, 시드니가 선의 승인 없이 게펀과 거래를 진행했으며, 계약 과정에서 서명이 위조되고, 가짜 법률 대리인이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었다.
선의 주장에 따르면, 컨설턴트는 자코메티의 작품을 게펀의 소장품 두 점(총 5,500만 달러 가치)과 1,050만 달러의 현금과 맞바꾸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선은 애초에 작품을 8,000만 달러 이상의 가격에 판매하기를 원했고, 계약 조건에 대한 승인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제 초점은 왜 계약을 진행한 컨설턴트가 아닌, 데이비드 게펀이 소송의 대상이 되었는가로 이동한다.
거대 컬렉터의 책임, 시장 내 윤리적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저스틴 선 측의 변호인은 게펀이 오랜 경력을 가진 컬렉터인 만큼, 거래 과정에서 위조된 서류와 불법적인 계약의 정황을 인지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은 현대 미술 시장에서 비교적 경험이 부족한 컬렉터이며, 게펀은 이를 알고도 정상적인 거래처럼 진행했다”는 논리가 핵심이다.
법률 문서에서도 “게펀의 팀이 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의심스러운 요소를 무시하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이는 현대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저버린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반면, 게펀 측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변호인 티보 나지(Tibor Nagy)는 뉴욕 타임스(New York Times)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판매자의 후회(seller’s remorse)’이며, 법적 근거가 없는 황당한 주장”이라고 밝혔다. 게펀은 오랜 기간 현대 미술 컬렉션을 구축하며 높은 신뢰도를 쌓아온 인물인 만큼, 그의 입장에서 이번 소송이 개인적인 명예와도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만약 게펀이 작품 구매 과정에서 서류 위조와 관련된 문제를 인지하지 못했다면, 단순한 계약상의 오류로 끝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미술품 거래 과정에서 불법적 요소가 개입되었음이 증명된다면, 이는 현대 미술 시장 전반에 대한 신뢰도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거대한 자본이 움직이는 현대 미술 시장, 거래의 신뢰성은 보장되는가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간의 법적 분쟁을 넘어, 현대 미술 시장에서의 투명성과 거래 윤리에 대한 중요한 논의를 촉발하고 있다.
▶컬렉터의 역할과 법적 책임
미술품 거래는 경매뿐만 아니라 프라이빗 세일, 중개인을 통한 비공식 계약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컬렉터는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시장 내에서 책임을 지닌 주체로 변화하고 있으며, 법적·윤리적 감시가 더욱 필요해졌다. 저스틴 선의 경우, 대리인을 통해 작품을 거래하면서도 거래 과정에 대한 충분한 감시를 하지 못한 점에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예술 시장의 신뢰성과 거래의 정당성
미술품 거래에서 법적 분쟁이 발생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나치 점령기에 강탈된 미술품의 반환 소송이나, 위작 문제로 인한 경매 취소 사건 등이 있다. 이번 사건 역시, 거래 과정에서의 서류 위조와 법적 하자가 발생했다면, 이는 예술 시장의 신뢰성을 흔드는 중대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작품 소유권의 법적 안정성
미술품은 단순한 상품이 아니라, 법적·문화적 소유권이 중첩된 복잡한 자산이다. 따라서, 거래가 성사된 이후에도 법적 소유권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컬렉터의 책임이 강조되는 시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저스틴 선과 데이비드 게펀의 소송전은 단순한 개인 간의 분쟁을 넘어, 미술 시장에서 컬렉터의 역할과 법적 책임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거대 자본이 움직이는 현대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 하나가 단순한 예술적 소유물을 넘어 법적·경제적 가치가 혼재된 복합적 자산이 된다. 이 과정에서 거래의 신뢰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법적 다툼과 시장 불안정성은 더욱 증가할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이 미술 시장에서 거래의 법적 안전성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개인 간의 다툼으로 남을 것인지는 앞으로의 소송 결과에 달려 있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컬렉터들은 이제 단순한 구매자가 아니라, 시장을 형성하는 주요 행위자로서 더 높은 수준의 책임을 요구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