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트렌드] 2025년 글로벌 경매 시장의 반등, 크리스티스 런던 경매가 남긴 시사점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도 ‘품격’ 있는 작품이 이끄는 경매 흐름
[KtN 임민정기자]2025년 3월,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스(Christie’s)의 ‘20th/21st Century’ 및 ‘Art of the Surreal’ 이브닝 세일은 글로벌 경매 시장의 회복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요한 지표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대비 경매 규모가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략적인 작품 선별과 신중한 사전 예측 덕분에 1억 3,010만 파운드(약 1억 6,660만 달러)를 기록하며 견조한 실적을 거뒀다. 이는 최근 미술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단순한 볼륨 확장이 아닌 ‘선별된 컬렉션’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입증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전반적인 경제 불안 속 에서도 ‘고품격 작품’이 이끄는 시장 흐름은 경매 시장에서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대형 경매사들이 작가의 희소성, 작품의 역사적 가치, 그리고 컬렉터 수요를 면밀히 분석하며 경매 라인업을 구성하는 경향이 더욱 강화되는 모습이다.
서양 현대미술과 초현실주의의 강세, 마그리트와 델보의 재조명
이번 경매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흐름은 여전히 초현실주의(Surrealism)의 강세였다.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1933년작 La reconnaissance infinie는 1,000만 파운드(약 1,3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올 시즌 런던에서 판매된 가장 고가의 작품이 되었다. 비록 지난해 크리스티스에서 3,000만 달러를 넘겼던 마그리트 작품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지만, 안정적인 시장 수요를 입증했다.
특히 폴 델보(Paul Delvaux)의 1938년작 La ville endormie는 예상가(180만 파운드)를 훌쩍 뛰어넘어 500만 파운드(약 640만 달러)에 낙찰되며, 델보의 시장 재조명을 예고했다. 이번 경매에서 델보의 세 점이 높은 경쟁 끝에 모두 고가에 낙찰되었으며, 이는 초현실주의의 지속적인 수요와 함께 작품 희소성이 높아지면서 가격이 상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대 교체가 진행되는 현대미술 시장, 1차 시장과의 경계가 희미해진 경매의 역할
이번 경매에서 주목해야 할 또 다른 포인트는 ‘첫 경매 출품작’이 전체 출품작의 72%를 차지했다는 점이다. 즉, 경매 시장이 단순히 기존 컬렉션을 재거래하는 공간이 아니라, 1차 시장(갤러리 및 아트페어)과 경계가 모호해지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이클 앤드루스(Michael Andrews)의 1978년작 School IV: Barracuda under Skipjack가 500만 파운드(약 640만 달러)에 낙찰되며 작가 경매 기록을 경신한 것은 이러한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존 미술 시장에서 비교적 주목받지 못했던 작가가 단번에 높은 경매가를 기록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젊은 컬렉터들의 적극적인 참여와도 연결된다. 최근 Z세대와 밀레니얼 컬렉터들의 증가로 인해 새로운 작가군이 빠르게 주목받고 있으며, 이들은 기존의 블루칩(Blue-chip) 작가보다도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작업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예상보다 선방한 성적, 하지만 불확실성은 여전
물론 이번 경매가 완벽한 성공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총 낙찰금액이 지난해 같은 경매 대비 30% 이상 감소한 것은 분명 시장 위축을 반영하는 신호다. 작품 수가 41% 줄어든 것은 공급 부족과 함께, 수집가들이 신중한 구매 결정을 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리스티스는 낙찰률 96%를 기록하며 ‘견조한 시장’을 유지했다. 특히 상위 10위권 작품 중 6개가 예측가를 웃돌았고, 전체 경매 중 37%의 작품이 예상가를 초과하며 판매된 점은 고무적이다.
이는 미술 시장이 단순한 경기 흐름에 따라 일관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컬렉터들의 신중한 선택과 작품의 역사적, 미학적 가치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임을 보여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작품이 경매에 출품되느냐’이며, 작품의 희소성과 미술사적 중요성이 시장을 견인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경매 시장의 미래: 과연 ‘안정적 투자처’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경매 시장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높은 영역이지만, 최근 몇 년간 변화하고 있는 몇 가지 흐름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마그리트, 달리, 델보와 같은 작가들의 작품은 꾸준한 수요를 보이며 경매 시장에서 안정적인 투자 자산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대미술 섹션에서 70% 이상이 첫 출품작이었다는 점은, 갤러리 시장과 경매 시장 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Z세대 및 밀레니얼 컬렉터들의 증가로 인해, 새로운 작가와 독창적인 작품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올해 경매 출품작 수가 40% 이상 줄어든 것은 단순한 경기 불황 때문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 시장에서 선택받는가’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신중하지만 확고한 시장, 변화하는 컬렉터 패턴을 읽어야 할 때
이번 크리스티스 경매는 전반적인 시장 위축 속에서도 ‘품격 있는 작품’이 확실한 경쟁력을 갖춘다는 점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미술 경매 시장은 단순한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로 설명하기 어려운, 보다 정교한 전략과 선택이 필요한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컬렉터 세대의 변화, 초현실주의 및 근대미술의 지속적인 강세, 신진 작가들의 부상과 같은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는 것이 향후 미술 시장을 읽는 핵심이 될 것이다.
향후 경매 시장이 단순한 투자 자산으로서의 기능을 넘어, ‘진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움직일 것인지, 혹은 또다시 투기적 과열로 변질될 것인지—그 방향성은 지금의 컬렉터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