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테크] 2025년 경매 시장의 변곡점: 위축된 시장 속에서 가치를 찾는 컬렉터들
런던 경매, 축소된 규모 속에서도 ‘선별적 투자’ 경향 뚜렷
[KtN 임민정기자] 2025년 3월,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스(Christie’s)와 소더비(Sotheby’s)의 주요 경매는 미술 시장의 새로운 국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신호탄이 되었다. 경매 시장이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지 못하는 상황에서, 출품작의 수는 줄었지만 ‘선별된 작품’에 대한 컬렉터들의 집중적인 관심이 돋보였다.
크리스티스의 20세기/21세기 및 초현실주의 경매는 총 1억 3,010만 파운드(약 1억 6,660만 달러)를 기록하며 소더비의 6,250만 파운드(약 7,860만 달러)를 압도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지난해 같은 경매 대비 감소한 것이며, 특히 크리스티스의 경우 출품작이 41% 줄어든 점이 눈에 띈다. 이는 경매사들이 신중하게 작품을 선별하고, 시장의 수요 변화에 발맞추려는 전략적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신작 출품 부족, 초현실주의 강세 속 기존 거장들의 시장 변화
이번 경매에서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신작(ultra-contemporary) 출품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소더비는 아예 ‘The Now’라는 신작 경매 섹션을 폐지했으며, 크리스티스 역시 현대 신작을 제한적으로 포함했다.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컬렉터들은 보다 안정적인 투자 대상으로 눈을 돌리고 있으며, 검증된 작가들의 작품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이와 동시에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품들이 여전히 강세를 보였다. 크리스티스의 Art of the Surreal 경매에서는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의 1933년작 La reconnaissance infinie가 1,000만 파운드(약 1,330만 달러)에 낙찰되며 이번 시즌 런던 경매에서 가장 높은 낙찰가를 기록했다. 또한 폴 델보(Paul Delvaux)의 1938년작 La ville endormie는 620만 파운드(약 796만 달러)에 판매되며, 작가의 경매 기록을 갱신했다.
그러나 반대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과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와 같은 블루칩(Blue-chip) 작가들의 주요 작품들은 기대보다 낮은 관심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시장 위축 때문이 아니라, 컬렉터들의 기호가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즉, 무조건적으로 네임 밸류가 높은 작가를 선택하기보다는, 작품 자체의 희소성과 역사성을 중시하는 흐름이 강화되고 있다.
1차 시장과 경매 시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현상
경매 시장의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1차 시장(갤러리 및 아트페어)과 경매 시장 간의 경계가 더욱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크리스티스 경매에 출품된 작품 중 72%가 처음으로 경매에 등장한 작품이었으며, 일부 현대 신작은 예상가를 크게 상회하는 낙찰가를 기록했다. 이는 미술 시장에서 경매가 단순히 기존 컬렉션을 재거래하는 플랫폼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들이 공식적으로 가격을 책정받는 1차 시장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번 경매에서는 다니엘 맥킨니(Danielle McKinney)의 2021년작과 저스틴 카귀앗(Justin Caguiat)의 2023년작이 출품되어 높은 경쟁률 속에 낙찰되었다. 컬렉터들은 경매장에서 직접 신작을 구매하며 시장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는 갤러리 중심의 기존 유통 구조에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경매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경제 불확실성, 그리고 영국 미술 시장의 위기
현재 경매 시장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경제와 정치적 불안정성이 미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컬렉터들은 불확실한 경제 상황 속에서 보다 안전한 투자 대상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신진 작가들의 작품보다 검증된 거장들의 작품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영국 미술 시장은 브렉시트 이후 행정 절차가 복잡해지며 거래 비용이 증가했다.
부유층 컬렉터들이 세금 혜택이 좋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영국 경매 시장의 주요 고객층이 줄어들고 있다.
크리스티스와 소더비가 최근 홍콩과 파리 등지에 새로운 경매장을 오픈하며 ‘런던 중심의 경매 시장’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크리스티스가 최근 AI 작품만을 대상으로 한 경매를 진행했으며, 총 72만 8,784달러의 낙찰액을 기록했다.
이는 향후 디지털 아트 및 AI 기반 예술 작품의 시장 가능성을 테스트하는 실험적 시도로 볼 수 있다.
경매 시장의 미래: ‘안정적 투자’의 장인가, 혹은 변화의 기로인가?
2025년 경매 시장은 단순한 상승·하락 곡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질적 변화’를 겪고 있다.
✅ 초현실주의 및 검증된 거장들의 지속적 강세
✅ 신작 및 신진 작가의 비중 감소, 보다 신중해진 컬렉터 시장
✅ 1차 시장과 경매 시장의 경계가 흐려지는 구조적 변화
✅ 영국 미술 시장의 구조적 위기와 글로벌 분산화 트렌드
이번 런던 경매는 시장이 단순한 과열이나 침체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교한 선택과 전략이 필요한 ‘신중한 컬렉팅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컬렉터들은 더 이상 블루칩 작가의 이름값만으로 투자하지 않으며, 작품의 미학적 가치와 역사적 중요성을 보다 면밀히 분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제 경매 시장은 단순한 예술품 거래의 장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 다음 세대를 대표하는 ‘가치 있는 자산’으로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무대가 되었다. 변화하는 시장 속에서 컬렉터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리고 경매사들이 이에 어떻게 대응할지, 2025년 경매 시장의 다음 흐름이 주목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