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ISDS가 '불법'이라 규정한 삼성합병, 사법부는 왜 '합법'이라 했나
국제중재와 국내 판결의 충돌… 정의는 누구를 향하는가 국민 세금 2,300억의 행방, 누구의 손익인가
[KtN 박준식기자] 정부가 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 캐피털과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에서 패소하며 약 438억 원을 배상하게 됐다. 2023년 엘리엇에 이어 또다시 외국계 자본에 지급되는 거액의 세금. 그러나 이 돈의 출처는 기업도, 정부도 아닌 ‘국민’이다.
이제 국민은 정경유착의 유산을 세금으로 떠안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그 돈이 어디에서 잘못됐고, 왜 국민이 책임지는지조차 설명받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메이슨 ISDS 판결은 단지 투자자 보호의 문제가 아니다. 이 사건은 정경유착, 사법 실패, 국가 무책임이라는 세 갈래 권력이 어떻게 결탁해 국민을 비용으로 전락시켰는지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국제중재와 사법부 판단이 충돌한 유일한 사건
이 사건은 전례 없는 특징을 갖는다.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국제 중재기구와 국내 형사법원이 전면적으로 충돌했다.
▶국제중재 판정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정부가 연금을 동원해 외국 투자자의 이익을 침해한 불법적인 개입이었다.
▶국내 형사법원 1·2심: 경영상 합리성이 존재하며 분식회계도 없었다. 무죄.
이는 단순한 판단의 차이를 넘는다. 사법부가 ‘합법’이라 판단한 행위에 대해, 국제사회는 ‘국가의 책임 있는 불법행위’라 단정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부당한 의결권 행사, 경영권 승계를 위한 기업결합의 불공정성, 그리고 그 배후의 청탁과 뇌물. 대법원은 이재용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 간 뇌물 수수는 ‘유죄’로 인정했지만, 합병의 핵심 불법성은 형사재판에서는 무죄로 결론 났다.
이 모순은 단순히 법리 해석의 문제일까, 아니면 사법 시스템이 감당하지 못한 권력의 무게일까?
‘법의 눈’은 누구를 향하고 있었는가
국민은 이 합병으로 손해를 본 국민연금의 가입자였고, 정경유착의 배후에서는 배제된 존재였다. 그러나 합병이 무죄로 결론 나자, 국민은 국가의 ‘불법’ 책임을 떠안는 납세자이자 보험자가 되었다.
반면, 가장 큰 수혜자인 삼성은 실질적으로 아무런 법적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이미 재판부는 뇌물공여와 직권남용에 대한 유죄를 선고하면서도, 그 핵심 동기였던 경영권 승계 합병은 ‘불법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정의의 구조는 이처럼 역전되었다.
사익을 위해 권력을 활용한 이는 자유롭고, 그 대가를 치르는 이는 이해당사자도 아닌 국민이다.
사법 시스템은 권력 앞에서 중립을 유지했는가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형사재판부는 ‘합병의 목적이 경영상 필요에 부합했다’는 논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는 국제중재 판정부, 그리고 대한민국 대법원의 뇌물 관련 유죄 판결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즉, 재벌 총수에게 유죄를 확정한 뇌물의 목적이었던 불법 합병은 정작 ‘불법이 아니다’라는 기묘한 모순이 형사 재판부의 논리 속에 용인된 셈이다. 이 괴리는 국민의 법감정은 물론 사법 신뢰까지 무너뜨렸다. 사법의 판단이 특정 권력의 이해관계에 기울지 않았는지, 제도적 성찰이 필요한 이유다.
책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책임지는 이는 없다
국제중재 판정부는 분명히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국민연금을 동원해 외국인 투자자의 자산을 침해했다. 배상하라. 이 명령은 단지 법적 책임만이 아니다. 이는 국가 시스템이 불공정한 구조 속에 작동했음을 국제적으로 선언한 것과 같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관련자들에 대한 구상권을 한 번도 행사하지 않았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이들에게조차 책임을 묻지 않는 상황. 이미 세금은 지출되고 있고, 지연이자는 국민의 부담으로 계속 누적되고 있다. 이 무책임의 사슬 속에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데, 국민만 손해를 떠안는 구조는 어떤 정의로 설명 가능한가.
국민을 위한 사법 정의가 가능한 사회인가
이번 사건은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이 재벌과 권력, 그리고 국민 사이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국제사회는 ‘불법’이라며 배상을 명령했고, 국내 사법부는 ‘무죄’라며 책임을 면제했다. 이 양극의 판단 속에서 국민은 어떤 보호도, 설명도 없이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다. 그리고 정부의 선택이다. 구상권을 행사할 것인가, 다시 침묵할 것인가. 정의란 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묻는 구조 안에서 완성된다. 이번 판결은 우리 사회가 그 구조를 갖추었는지에 대한 냉정한 검증이었다. 그리고 아직, 그 답은 유보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