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W25, 혼란의 시대 브랜드가 던지는 감각

패션은 침묵하지 않았다… 실루엣과 소재, 그리고 전략이 남긴 메시지

2025-03-22     임우경 기자
앤서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2025년 가을/겨울 생 로랑(Saint Laurent) 컬렉션을 통해 남성복의 새로운 서사를 구축했다. 사진=Saint Lauren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2025년 가을·겨울(FW25) 시즌은 디자이너 교체설과 크리에이티브 공백, 브랜드 리더십 불확실성이 난무한 한 해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러한 ‘권력의 공백기’는 런웨이에서 오히려 더욱 분명한 전략적 미학을 낳았다.

태그워크(Tagwalk)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FW25 시즌은 강한 어깨, 정제된 테일러링, 풍성한 퍼, 보수적 스커트 실루엣이 두드러졌다. 이는 단순한 유행이 아닌,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 브랜드들이 선택한 ‘미학적 생존 전략’이자 ‘정체성 복원 장치’였다.

정체성 복원이 트렌드가 되다-‘클래식’은 회귀가 아니라 리포지셔닝이다

FW25는 어떤 브랜드도 실험적 해체주의로 시장을 놀라게 하려 하지 않았다. Saint Laurent, Alaïa, Givenchy는 각각의 방식으로 여성 중심의 권위 있는 드레스 코드를 정제해 제시했고, 이는 테일러링 검색량 141% 증가라는 수치로 이어졌다.

과장된 퍼프 숄더, 날카로운 허리 라인, 울과 캐시미어 소재의 무광택 정장은 ‘과장된 과거’가 아닌 ‘현실적 고급스러움’의 언어로 기능했다. 이런 흐름은 단지 패션사조의 회귀가 아니라, 소비자의 감정과 브랜드의 정체성 사이 간극을 최소화하려는 전략적 접근이다. 경기 침체기, 소비자는 혁신보다 예측 가능한 미학에서 안정을 느낀다.

퍼와 레이스, 질감이 브랜드의 언어를 대체하다-텍스처는 ‘감각’이 아닌 ‘신뢰’의 코드로

올 시즌 주목할 변화는 시각보다 촉각에 가까운 영역, 즉 소재에 있었다. Hypebeast에 따르면 퍼(faux fur)는 FW24 대비 33%, 레이스는 160%나 사용량이 늘었다. 이는 ‘시선을 사로잡는 디자인’이 아니라, 착용자가 ‘신뢰하는 감각’을 기반으로 디자인한 전략임을 말해준다.

Chemena Kamali의 Chloé는 이를 가장 집요하게 보여준 케이스다. 레이스는 더 이상 로맨틱한 장식이 아니라, 브랜드가 다시 ‘디자인을 천천히 짓는 곳’임을 증명하는 장르가 되었다.

버버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진=예림출판사(Yelim Publishing),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랜드별 전략적 대응 분석-Miu Miu의 유지, Burberry의 반등, Chanel의 정지 상태

태그워크 브랜드 순위에서 Miu Miu는 여전히 1위다. 이는 Miu Miu가 지난 2년간 Z세대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고급 브랜드로서의 입지를 정교하게 유지해온 결과다. 중요한 건 Miu Miu는 새롭지 않지만 멀어지지도 않는 거리감을 유지한 데 있다.

반면 Burberry의 2위 진입은 전략적 리바운드였다. 6% 매출 하락, 디자이너 교체설, 시장 회의론 속에서도, 영국 정원이라는 가장 보수적인 아이콘을 가장 새롭게 제시했다. 이는 명확한 메시지를 남긴다. '과거'는 내용이 아니라 '구성 방식'을 바꾸면 전략이 된다.

Fendi는 퍼를 다시 주제로 삼으며 100주년 컬렉션을 퍼포먼스형 리브랜딩의 장으로 활용했고, 디자이너 공석 상태였던 Chanel과 Gucci는 각기 다른 이유로 브랜드 내구력만으로 생존하는 전략을 택했다. Chanel은 ‘무해한 정체성’으로, Gucci는 ‘논란 후 교체’라는 노이즈 전략으로 각각 상황을 넘겼지만, 이들은 디자인이 아니라 기업 관리 모델의 실험장이 되고 있다.

크리에이티브가 아니라 ‘브랜드 운영 방식’이 경쟁이 되는 시대

FW25 시즌은 런웨이가 더 이상 순수 크리에이티브의 전시장이 아니라, 브랜드 운영의 전략 언어를 시각화하는 구조임을 명확히 보여줬다. 디자이너 교체, 매출 하락, 소비자 충성도 저하 등 외부적 위기를 겪은 브랜드일수록 미학적 실험보다 핵심 정체성의 재정비를 우선시했으며, 결국 생존한 브랜드는 ‘잘 만든 과거’를 더 세련되게 다듬은 곳이었다.

지금 패션은 디자인보다 '재구성 능력'이 경쟁력이다

FW25는 혁신의 시즌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어느 시즌보다 ‘브랜드가 어떤 가치를 지키려 하는가’가 뚜렷하게 드러난 시기였다. 디자인 언어의 실험보다 중요한 건, 자신이 만든 역사 속에서 ‘무엇을 버리지 않을 것인가’를 정하는 용기였다. 패션은 말이 없지만, 옷은 말했다. "우리는 아직 우리가 누군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