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억되지 않는 이미지의 시대, 자무쉬가 꺼낸 '기억의 감각'

The Skateroom x Jim Jarmusch 협업이 보여준 예술 소비의 전환과 감각의 정치성

2025-03-22     임민정 기자

 

[KtN 임민정기자] 2025년, 우리는 이미지의 과잉을 넘어 '이미지의 탈맥락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하루에도 수천 장의 이미지가 업로드되고 소비되지만, 그중 대부분은 출처, 맥락, 의도를 알 수 없는 채 흘러간다. 우리는 이미지를 보고 있으나, 더 이상 '응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지만, 거의 아무것도 머물지 않는다.

이러한 시대적 조건 속에서 짐 자무쉬(Jim Jarmusch)는 의미심장한 움직임을 취했다. 그는 40년 전, 아날로그 TV에서 흘러나오던 흑백 영화의 스틸컷을 촬영해 남겨둔 이미지를 꺼내, 스케이트보드 위에 배치했다. The Skateroom과 함께한 이번 협업은 단순한 한정판 아트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기억되지 않는 이미지들의 시대에, 기억 가능성을 회복하려는 예술적 저항이자 감각의 회복을 요구하는 정치적 제안이다.

자무쉬는 언제나 주변부의 미학, 침묵의 서사, 느림의 미덕을 옹호해왔다. 그의 영화는 구조가 없고, 결론이 불분명하며, 빈칸이 많다. 이번 프로젝트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세 장의 흑백 이미지가 무작위로 구성된 스케이트 데크는, 어떤 서사도 강요하지 않는다. 작품은 관객의 해석 없이는 완성되지 않으며, 그 미완성성은 의도된 불완전함이자 반자본주의적 미학이다.

이와 같은 시도는 단순히 '쿨한 콜라보'로 소비되기보다는, 동시대 예술이 처한 본질적 위기에 대한 진단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예술은 여전히 팔려야 하고, 유통되어야 하며, 플랫폼화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무쉬는 그 조건 위에서 '소비되는 예술'이 아니라, '기억되는 예술'을 상상하려 한다. 그것은 소유의 욕망이 아니라 감각의 응집에 대한 실험이다.

여기에 '48시간 한정 판매'라는 설정은 이중적 함의를 가진다. 한편으로는 리미티드 마케팅의 전형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에게 감각의 집중을 요구하는 장치다. 무한한 이미지 유통에 익숙한 시대에, 제한된 시간과 수량은 예술과 접속하는 방식 자체를 재조정한다. 여기서 우리는 예술을 '기억과 접속의 정치'로 확장하는 실천을 목격하게 된다.

또한, 스케이트보드는 이 프로젝트의 미학적 매개이자 정치적 장소다. 데크는 거리에서 쓰이고, 마모되고, 흠집난다. 그것은 전시장에 걸린 그림처럼 보호받지 않으며, 오히려 도시의 표면과 직접 마찰하며 존재를 증명한다. 예술은 여기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거리의 사용성과 일상의 운동성 속에서 구성된다.

더 나아가 이 협업은 예술의 장소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예술은 더 이상 미술관이나 화이트 큐브에서만 성립하지 않는다. 자무쉬의 이미지는 스케이터 비트리스 도몬드(Beatrice Domond)의 움직임을 통해 뉴욕의 거리로 나아간다. 그 거리성은 자본의 중심부이기도 하지만, 저항과 운동, 서브컬처의 언어가 살아있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 프로젝트는 도시 공간 위에서 예술과 정치가 재조우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The Skateroom x Jim Jarmusch 프로젝트는 단지 과거의 이미지를 현재화한 것이 아니라, 감각의 해방을 요청하고, 소비의 형식을 재구성하며, 예술의 장소를 다시 묻는 행위였다. 그것은 오늘날 이미지와 기억, 예술과 유통, 창작과 자본이라는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가장 사적인 방식으로 응답하는 하나의 제안이었다.

짐 자무쉬는 아무 말 없이 그 이미지를 꺼냈고, 말 대신 여백을 남겼다.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아마도, 더 많은 말이 아니라, 더 깊은 침묵과 더 느린 이미지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여전히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다시 기억하고 있는가?

예술은 질문이고, 자무쉬는 그 질문의 방식 자체를 다시 바꿨다. 지금, 그 질문은 소비자에게도 향한다. "이 이미지가 당신에게 남을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