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분석②] 사법의 두 얼굴… ‘불법’이라며 배상 명령한 국제법, ‘무죄’라며 면죄부 준 국내법

삼성 합병에 대한 상반된 판단… 정의의 일관성은 왜 무너졌는가

2025-03-24     박준식 기자
메이슨 ISDS 판결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두 개의 사법 시스템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사진=2024.02.05  유튜브 갈무리 / 편집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메이슨 ISDS 판결은 하나의 사건에 대해 두 개의 사법 시스템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렸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국제사법은 “불법 개입”이라며 한국 정부에 배상 책임을 부과했고, 국내 형사법원은 “불법성 없다”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같은 팩트를 놓고 ‘불법’과 ‘합법’이 공존하는 모순적 현실. 이 극단적 불일치는 단순한 법적 견해 차이를 넘어, 대한민국 사법시스템의 신뢰 기반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다.

국제판결: 정부 개입에 책임 묻고, 배상 명령

2025년 3월,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은 메이슨이 제기한 ISDS 사건에서 정부의 책임을 명확히 인정했다.

국제 중재판정부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것은 정부의 부당 개입 결과이다.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에게 공정하고 일관된 행정 환경을 제공할 의무가 있었지만, 이를 어겼다.

▶그로 인해 투자자는 명백한 재산적 손실을 입었으며, 한국 정부는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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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판결은 2016년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회장, 문형표 전 복지부 장관 등 핵심 인물들의 형사 재판 유죄 확정 사실을 근거로 삼았다. 즉, 국제사법은 ‘법적 책임의 연결고리’를 명확히 인식했고, 그것이 곧 국가의 책임으로 귀결되었다.

국내판결: “합병은 정당했다”… 형사 무죄 선고의 충격

반면 국내 1·2심 법원은 2023~2024년에 걸쳐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합병의 목적은 경영권 승계가 아니라 경영상 판단이었다.

▶분식회계는 입증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개입한 직접적 정황은 불충분하다.

 

이는 대법원이 이미 인정한 국정농단 사건의 유죄 취지와도 상충되는 판결이었다.법원은 형식 논리에 따라 판단을 구성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시민 감각과 국제적 법 감정 모두와 충돌하게 되었다.

사법의 자기모순: 왜 정의는 동일한 사건에 대해 다른 판단을 내렸는가

두 사법 판단의 간극은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사건 중심의 정의’가 아닌, ‘시스템 중심의 면책’을 허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국제사법은 실질적 책임과 피해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국내사법은 행위의 고의성, 절차적 흠결 여부에만 집중했다.

즉, ‘현실의 정의’와 ‘서류상의 무죄’ 사이의 간극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러한 괴리는 시민들에게 불신을 안기고, 향후 대형 경제범죄 사건에서 사법의 정당성을 근본적으로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

사법적 공백이 낳은 구조적 위험

이번 판결 이원화는 세 가지 위험을 동반한다:

정의의 자의화:

동일한 사실관계에 대해 국가마다, 사법부 내에서도 결론이 달라지는 불확실성의 확대.

정책 실패의 반복 가능성:

부당한 기업 합병이나 정부 개입이 추후에도 면죄될 수 있다는 신호.

국가 신뢰도 하락:

국제투자자는 한국의 법적 일관성을 의심하게 되고, 외국계 자본의 이탈과 국가 리스크 프리미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남은 건 대법원의 책임이다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국내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남아 있다. 이재용 회장의 무죄 판결을 그대로 확정할 것인지, 혹은 대법원이 일관된 법리와 사법적 책임의 기준을 복원할 것인지, 지금의 사법체계가 직면한 시험대다.

이 판결은 단지 한 재벌 총수의 유무죄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법이 국제사회와 시민 앞에서 어떤 정의를 내릴 수 있는지의 바로미터다. 더 이상 법은 사적 면책의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가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은 이 사법적 불일치를 바로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