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트렌드 기획③] 디지털 시대의 기억과 장소 – 쉬가에프의 예술, 그리고 AI 이후의 신화

기억은 어디에 존재하는가 – 장소성의 소멸과 회화의 저항

2025-03-24     임우경 기자
Солнечный конь1997. Холст, акрил. 200х100. Собственность автораSunny Horse1997. Canvas, acrylic. 200x100.The Property of the artist.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디지털 기술은 이미지의 경계를 지운다. 생성형 AI는 무수한 데이터를 학습해 ‘신화적 이미지’조차 자동 생성해낸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 질문이 발생한다. 기억 없는 형상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작가 쉬가에프의 작업은 바로 이 질문에 정면으로 응답한다. 작가는 구체적인 장소에서 출발한다. 키르기스의 산맥, 마을, 유년기의 풍경, 고유한 신화의 상징들—그 모든 것들은 추상화되지 않은 '삶의 장소'에서 비롯된다. 쉬가에프에게 회화는 단순한 묘사가 아니라, 기억을 각인하고 그 장소의 존재론을 복원하는 행위다.

AI는 장소를 생성할 수 있는가? – 이미지의 비장소성과 예술적 감각의 차이

AI 기반 생성 이미지들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풍경’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이는 미학적으론 인상적이지만, 장소성과 기억의 결합이 결여된 비장소적 시각성(non-site-specific visuality)으로 귀결된다.

반면 작가 쉬가에프는 특정 지형, 신화, 서사를 바탕으로 한 ‘장소 고유의 미감’을 구축한다. 이는 일회성 소비를 지향하는 디지털 아트와 본질적으로 구별된다. 디지털 예술이 ‘무한 복제’를 전제로 한다면, 쉬가에프의 회화는 ‘회귀하는 기억’을 전제로 한다. 즉, 디지털 예술이 어디에도 없는 장소를 만든다면, 쉬가에프는 지워진 장소를 다시 그리는 예술을 수행한다.

AI와 초현실주의의 융합은 뷰티 산업의 글로벌 확장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임우경 교수 논문「생성형 AI를 활용한 초현실주의 바디아트 콘텐츠 연구」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억의 정치 – 신화 회화는 무엇을 복원하는가

쉬가에프의 회화는 기억의 정치적 복원을 수행한다. 잊힌 장소, 침묵한 역사, 그리고 단절된 신화를 작가는 다시 현재화한다. <Shelter> 연작은 병든 아이들을 그린 연작이지만, 단지 사회참여적 메시지를 넘어서 보이지 않는 존재들의 기억을 회화라는 공간에 고정시키는 시도다.

이는 오늘날 예술의 정치성과도 맞닿는다. 생성형 AI가 불특정한 이미지들의 병렬적 시각성에 몰두할 때, 쉬가에프는 기억의 층위와 장소의 깊이를 복원한다. 디지털 시대의 예술이 본질적으로 ‘속도’를 가질 때, 쉬가에프는 그 속도에 저항하는 ‘무게’를 가진다.

장소 기반 예술의 귀환

쉬가에프의 작업은 다시 한 번 묻는다. "예술은 어디에서 오는가?" 이 질문은 단지 지리적 출발점을 묻는 것이 아니다. 신화가 존재했던 땅, 기억이 쌓여 있던 표면, 바람과 색채가 지나갔던 시간—그런 장소의 밀도를 예술이 다시 품을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생성형 AI의 시대에도, 쉬가에프 같은 작가들이 제시하는 방식은 분명한 방향을 제공한다. 기억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장소를 재구축하는 예술. 이 방향은 장소성과 의미, 감정과 구조가 조화롭게 얽힌 예술을 가능케 한다.

Путники. 1990. Холст, масло. 140х175. Собственность автора Travelers. 1990. Oil on canvas. 140x175. The Property of the artist.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디지털 신화의 시대, 작가가 회복해야 할 감각

디지털은 신화를 잊게 만든다. 혹은 너무 쉽게 생성해 그 가치를 흐리게 만든다. 그러나 쉬가에프는 신화를 기억의 구조로, 장소의 언어로, 존재의 풍경으로 복원한다.

AI가 아무리 이미지의 양을 늘려도, 그 이미지가 뿌리내릴 ‘장소’가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신화가 되지 못한다. 쉬가에프의 작업은 예술이 장소를 기억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신화는 여전히 ‘기억의 땅’ 위에서만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