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트렌드 기획③] ‘루벤스를 밀어낸 야돔 보아키’ 미술 작가 위계는 지금도 유효한가

작가의 연대기보다, 세대의 감각을 반영하는 미술 시장의 기준 변동

2025-03-25     임민정 기자
Lucy Bull, , 2022, Oil on linen, 213.4×172.7×2.9cm. Courtesy of David Kordansky Gallery. Photogaph © Elon Schoenholz

[KtN 임민정기자] 2024년, 경매 시장에서 루벤스는 13점의 작품을 통해 약 6,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반면, 1977년생 여성 작가 리넛 야돔 보아키는 단 15점으로 1,300만 달러 이상을 거두었다. 17세기 유럽 미술의 상징이 21세기 작가에게 실질적으로 ‘역전’된 것이다. 가격의 반전은 곧 권위의 재편이며, 작가 위계의 질서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위대한 작가’의 자리는 더 이상 고정되지 않는다

한때 ‘위대한 예술가’라는 타이틀은 시대, 국가, 미술사적 의미 등 복합적인 요소에 의해 결정됐다. 그러나 지금의 시장은 더 이상 과거를 향해 평가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감각, 정치성, 젠더 정체성, 디지털 문화와 연결되는 작가가 우선순위를 갖는다. 즉, ‘예술성’이라는 추상적 개념보다, 사회적 파급력과 서사적 정합성이 작가의 위상을 결정한다.

바스키아의 기록적 낙찰가(1억 1,000만 달러)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젊은 컬렉터는 바스키아의 ‘미학’보다는 ‘메시지’, ‘전설성’, ‘미디어 적합성’을 소비한다. 미술은 더 이상 예술사적 숭고함으로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작가가 ‘어떤 시대의 말을 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위계의 해체, 그리고 ‘다층적 권위’의 등장

이 같은 변화는 단지 전통의 퇴조가 아니라, 권위 구조의 다층화를 의미한다. 고전 거장의 가격이 떨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권위가 더 이상 독점적이지 않다는 점이 핵심이다. 리넛 야돔 보아키, 아베리 시너, 매튜 웡, 루시 불 같은 작가들이 동시대의 정서와 철학, 미감에 더 가까운 화법을 제시하며 새로운 권위를 획득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젊은 작가의 유행’이 아니다. 중동·아시아·아프리카·남미 등 지리적 확장성과 정체성 기반의 서사성을 함께 품고 있다는 점에서, 미술 작가 위계의 세계적 재편으로 읽힌다.

Lucy Bull, 18:37, 2022, Oil on linen, 214×172.7×4.1cm. Courtesy of David Kordansky Gallery. Photograph © Jeff McLane

새로운 작가의 등장은 예술의 미래를 말한다

Adrian Ghenie나 Toyin Ojih Odutola, 그리고 Lucy Bull은 가장 치열한 철학, 가장 감각적인 색채, 가장 세속적인 소재를 품은 채 시장에 등장했다. 그들이 전통적 미학을 계승했는지 여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지금 누구에게 발화하고 있는가’, ‘어떤 정서의 기후를 그려내고 있는가’이다.

이제 미술 시장은 작가의 이력서보다 작가의 시대성을 읽는다. 회화냐 설치냐, 신진이냐 거장이냐보다 작업이 무엇을 감각하고 있으며, 어떤 세계를 예감하고 있느냐가 중심이 된다. 그리고 바로 이 기준이 지금의 시장에서 ‘누구의 작품이 팔릴지’를 결정짓는다.

KtN 리포트

거장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이제 여러 시공간에서 복수로 존재하는 시대다. 미술사적 ‘위대한 이름’은 더 이상 절대 기준이 아니다. 권위는 해체되고, 취향은 다원화되며, 미술은 지금 질서가 아닌 대화의 방식으로 재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