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④] 불안의 패션화, 디스토피아 이후의 미학

Balenciaga, 파괴된 일상 속에서 구축되는 정체성의 언어

2025-03-25     임우경 기자

 

[KtN 임우경기자] Balenciaga의 2025 F/W 컬렉션은 다시금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무엇을 입는가가 아니라,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는가. 이번 시즌, Balenciaga는 의복 자체를 통해 오늘날의 정서적 풍경 즉 불확실성, 피로, 균열, 탈진을 시각화하며, 포스트-디스토피아 시대의 패션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남겼다.

거대한 어깨, 흐트러진 밑단, 과도하게 낡아 보이는 소재, 그리고 무채색의 연속은 단순한 스타일링이 아닌, 시대 감정의 시각화된 드라마에 가깝다. 이 컬렉션은 여전히 Demna 특유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번에는 그 언어가 이전보다 훨씬 더 조용하고 차가운 분노의 층위를 띤다.

포스트-디스토피아 패션: 피로, 균열, 생존의 상상력

Balenciaga의 이번 컬렉션은 기존의 고급 패션이 보여주던 이상적 삶의 제시가 아닌, 균열 난 일상에 대한 직면이다. 오버사이즈 코트, 바닥을 질질 끄는 팬츠, 망가진 듯한 신발은 ‘지금 이 순간의 생존’을 암시하며, 이는 코로나 팬데믹 이후 급격히 확산된 현실 기반의 디스토피아 미학을 고도화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이 불안한 조형들이 더 이상 ‘도발’로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객은 이미 이러한 비주얼 언어에 익숙하다. Demna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불편함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전략을 구사한다. 관객은 이질감에서 물러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오늘의 감정을 확인하게 된다.

스타일이 아닌 상태(state)를 입는다는 것

Balenciaga는 더 이상 스타일을 제안하지 않는다. 그들이 제시하는 것은 하나의 ‘심리적 상태’, 혹은 사회의 정서적 풍경이다. 예를 들어, 이번 시즌 등장한 스카프처럼 감긴 재킷과 지쳐 보이는 실루엣은 단지 옷을 입는 방식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감싸는’ 몸의 언어에 가깝다.

이는 곧 패션이 정체성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정체성의 상처를 드러내는 도구로 변모하고 있음을 뜻한다. Balenciaga는 이를 통해 기존 패션 언어의 구조를 전복하며, 패션을 삶의 상태를 담는 서사적 그릇으로 확장하고 있다.

고급 패션은 여전히 세계의 불안과 대화할 수 있는가

Balenciaga는 이번 시즌을 통해, 패션이 여전히 동시대와 긴밀히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다. 그리고 그 연결은 화려함이나 이상적 이미지가 아닌, 균열과 피로, 그리고 조용한 정서의 파편을 통해 이루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 전략이 단순한 충격 요법에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브랜드는 고급 패션이 시대의 트라우마를 어떻게 비평하고 번역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지속적 실험을 수행 중이며, 이는 단지 ‘디스토피아적 스타일’로 축소될 수 없는 복합적 감정 언어다.

Balenciaga의 2025 F/W는 포스트-디스토피아 시대의 정서적 풍경을 구조화한 하나의 비평적 복식 시스템이다. 이 브랜드는 여전히 불편한 감정, 균열 난 현실, 그리고 낡아가는 세계와 대화할 수 있는 패션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언어는 점점 더 조용하고, 점점 더 명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