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nd Insight 시계 ③] 기능인가 쇼인가? 스포츠 협업 시계의 양면성

운동선수와 하이엔드 시계, 진짜 시간을 위한 연결인가 러닝 중에도, 서브 직전에도, 투르비용이 필요할까

2025-03-25     박준식 기자
브레게(Breguet)가 ‘마린 투르비용 에콰시옹 마샹 5887’을 새롭게 선보이며 고급 시계 시장에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Breguet,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테니스 코트 위에서, 레이스 트랙 한복판에서, 또는 PGA 챔피언십의 그린 위에서 럭셔리 시계는 요즘 점점 더 ‘스포츠 현장’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리고 그 대표적 결과물이 바로 스포츠 × 시계 협업 컬렉션이다. 로저 페더러와 롤렉스, 라파엘 나달과 리차드 밀, 르브론 제임스와 오데마 피게, 타이거 우즈와 롤렉스, 최근에는 테니스 유망주 카를로스 알카라스와 룰로르 LVMH 계열의 제니스까지. 그 어느 때보다 스타 중심의 컬래버레이션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말 이 시계는 그들이 운동할 때 쓰는 시계인가?”

실용성의 이면에 감춰진 브랜딩 전략

하이엔드 시계 브랜드들은 '기능성'을 표방한다. 리차드 밀은 시계 경량화를 위해 카본 TPT® 같은 소재를 활용하고, 내충격성, 방수성, 인체공학적 설계를 강조한다. 하지만 1억 원이 넘는 시계로 실제 경기를 뛰는 선수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협업 시계는 ‘착용 가능한 시계’라기보다 ‘화면에 노출될 소품’에 가깝다.

다시 말해, 이 협업은 ‘기능적 필요’보다 ‘브랜드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춘다. 브랜드는 운동선수의 정밀한 경기력, 신체적 강인함, 한계를 돌파하는 이미지에 자신들의 기술적 정체성을 겹쳐 놓는다. 하지만 그 접점은 종종 상징에 머물고, 실사용 맥락은 비워진다.

롤렉스는 포뮬러 1과의 협력을 통해 기술 혁신의 선두주자로서의 이미지도 함께 강조한다./사진= Rolex/James Mo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스타 앰배서더 체제’의 과잉

오늘날 시계 업계의 협업 구조는 ‘제품 중심’에서 ‘인물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리차드 밀의 나달 에디션은 나달의 플레이 스타일과 체형에 맞춰 초경량으로 설계됐다는 내러티브를 강조한다. 그러나 소비자가 얻는 것은 그 기능보다 그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욕망이다. 결국 ‘이 시계를 착용하면 나달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 이 점에서 스포츠 협업 시계는 철저히 정체성 소비를 위한 도구다.

이 전략은 단기적으로 브랜드의 가시성을 높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계 본연의 기능성’에 대한 신뢰를 희석시킬 위험도 내포한다. 더구나 협업의 과잉은 브랜드 간 차별성을 무디게 만들고 있다.

협업을 위한 운동선수, 아니면 운동선수를 위한 협업

진정성 있는 스포츠 협업이란, 선수의 실제 니즈에 기반해 설계되고, 실전에서 기능하는 제품으로 귀결돼야 한다. 예컨대 오메가의 씨마스터 다이버 300M처럼 실제 잠수 전문가들이 사용 가능한 수준의 방수 기능을 갖추거나, 가민(Garmin)처럼 데이터 분석 기반의 실시간 피드백 기능이 포함된 스마트 시계 형태의 협업은 상대적으로 실효성이 높다.

하지만 현재 하이엔드 브랜드 다수는 ‘기능’보다는 ‘이야기’를 설계한다. 스포츠는 마케팅의 언어로 차용될 뿐, 제품의 실제 설계 철학에는 깊게 반영되지 않는다.

이처럼 롤렉스는 포뮬러 1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자신의 럭셔리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고, 동시에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확보하고 있다./사진= Rolex/James Mo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기능이 결여된 협업은 오래가지 않는다

오늘날 스포츠 협업 시계는 ‘스타를 통해 스토리를 파는 구조’로 수렴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은 점점 더 기능성과 진정성에 민감해지고 있다. 단지 누구와 협업했느냐보다, 그 협업이 ‘어떤 맥락에서 필요했는가’에 소비자는 관심을 두고 있다.

브랜드는 이제 물어야 한다. "이 협업은 진짜 스포츠를 위한 것이었는가?” 진짜 기능을 탑재한 시계, 진짜로 필요한 협업, 그것이야말로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시계가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기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