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트렌드 기획①] 유산의 재해석, 스타일의 권력화: 생로랑이 샤를로트 페리앙을 다시 호출한 이유
‘누구를 위하여 가구를 만드나?’ 디자인의 본질을 되묻는 현대적 실험
[KtN 임민정기자] 2025년 밀라노 Salone del Mobile에서 가장 강렬한 디자인 담론은 가구 자체가 아닌, 그 ‘재소환 방식’이었다. 생로랑(Saint Laurent)이 프랑스 근대 디자인의 선구자 샤를로트 페리앙(Charlotte Perriand)의 작품을 오더메이드 방식으로 복원하며 선보인 전시, Saint Laurent — Charlotte Perriand. 이 기획은 단순한 오마주를 넘어, 현대 명품 패션 하우스가 디자인 유산을 어떻게 해석하고 소비시키는가에 대한 미학적 질문을 던진다.
앤서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가 선택한 네 작품은 모두 1943년부터 1967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가구의 역사적 맥락과 제작자 개인의 삶이 섬세하게 결합되어 있다. 리우 데 자네이루 책장은 페리앙이 두 번째 남편 자크 마르탱을 위해 디자인한 것으로, 지난 25년간 단 세 차례만 공개되었을 정도로 희귀하다. 1943년작 인도차이나 암체어는 실물이 유실돼 일러스트를 바탕으로 복원되었고, 1963년의 ‘밀푀유 테이블’은 복잡한 제작 공정 때문에 실제로 구현된 적 없는 축소 모델이었다. 마지막으로, 1967년 일본 대사의 파리 공관을 위해 제작한 소파는 공공 영역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가구의 귀환, 패션의 제의
이 전시가 의미심장한 이유는 단순히 역사적 가구를 재현했다는 점에 있지 않다. 생로랑은 패션 브랜드의 언어로 디자인 유산의 권력화를 시도한다. 이는 ‘사물의 복원’이라기보다 ‘스타일의 재소유’를 통한 미학적 주권 선언에 가깝다. 패션과 디자인의 융합은 더 이상 경계를 넘나드는 협업이 아니라, 과거의 영감을 현재의 미적 기준으로 다시 배치하는 권력의 방식이다.
특히 페리앙의 디자인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와의 협업이나 일본·인도차이나에서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공간적 사유를 담고 있다. 생로랑은 이를 단순히 브랜드의 ‘컬렉션 아이템’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더메이드라는 장치를 통해 수요층과 생산 구조 모두를 다시 구성한다. 대량생산과는 거리를 둔 이 방식은 단일 오브제를 하나의 ‘기호적 토템’으로 승화시키며, 오로지 선택된 이들만이 소유할 수 있는 권위의 상징으로 작동한다.
디자인의 주체는 누구인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누구를 위하여 가구를 만드나”이다. 이는 단지 사용자와 디자이너의 관계를 묻는 차원이 아니다. 생로랑은 이 유산들을 특정 계층을 위한 상징 자본으로 변환하며, 디자인의 존재 이유를 다시 질문하게 한다. 기능성을 넘어선 오브제, 미학적 권력으로서의 가구는 이제 ‘쓸모’보다는 ‘소속’을 가른다.
샤를로트 페리앙이 추구한 디자인은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것이었다. 여성 디자이너로서 남성 중심의 건축계에서 공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중심에 둔 작업을 해왔고, 기능과 형태의 간극을 해체하려 했다. 그러나 현재 이 가구들은 생로랑이라는 패션 제국의 미학 아래 재조립되며, 또 다른 맥락에서 ‘엘리트적 상징’으로 읽힌다.
디자인의 정치성, 유산을 다루는 새로운 방식
이번 전시는 단지 과거를 되살리는 복원 프로젝트가 아니다. 그것은 디자인의 정치성과 경제성, 그리고 기호학적 전유에 관한 논의다. 샤를로트 페리앙의 작업이 지녔던 공간과 기능의 민주성을, 생로랑은 선택과 주문의 프리미엄으로 치환하며 브랜드 헤리티지의 정점에 놓는다.
이 흐름은 단지 생로랑에 그치지 않는다. 최근 발렌시아가, 루이비통 등 명품 브랜드들이 건축·가구 디자이너의 유산을 복원하거나, 재해석해 전시 형식으로 선보이는 흐름은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도는 디자인의 보편성과 공공성을 약화시킬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디자인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