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기획①] “헌정 위기의 시대, 민주주의를 묻다”

정치 불신, 헌법질서의 와해, 그리고 광장의 귀환

2025-03-25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 극한의 언어가 정치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계엄’, ‘내란’, ‘파면’, ‘내전’이라는 단어들이 일상적인 담론으로 스며든 오늘의 한국사회는, 더 이상 정상적인 정치 시스템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광화문에 등장한 천막당사는 단지 야당의 상징이 아니라, 제도 정치가 기능을 상실한 공화국의 초상을 투사한다. 이제 질문은 명확해진다. "이 나라는 누구에 의해, 어떤 원칙으로 운영되고 있는가."

광장의 천막, 권력의 무게를 다시 묻다

2025년 3월, 서울 광화문 광장은 다시금 비상한 풍경을 담고 있다. 헌정 질서의 수호를 외치는 천막 당사, 집단 단식, 그리고 야권 지도부의 연속적 성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은 다시 '광장 정치'라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현실과 마주하고 있다. 탄핵 정국 100일을 넘긴 지금, 시민들은 헌재의 지연된 판단에 불신을 보내고 있으며, 정치권은 위헌과 내란이라는 극단적 언어로 격랑의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이 사태는 단순한 정쟁의 결과가 아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헌법을 수호하는 마지막 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침묵 속에, 정치 시스템 전반의 신뢰가 무너지는 광범위한 구조적 위기를 겪고 있다.

‘내란’이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되었다

민주당 최고위원단은 12.3 사태를 ‘헌정 쿠데타’로 규정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파면 촉구를 강도 높게 이어가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단순한 정적 비판을 넘어선다. 대통령이 헌정 위기 상황에서 계엄 재선포를 시도했다는 폭로, 국회 해산의 정황 증언, 군 기동부대의 대기 정황 등은 사실상 문민통치 체계를 정면으로 뒤흔드는 주장이다.

실제로 "내란 수괴", "계엄 2차 시도", "계엄면허증", "시체가방 3천 개"라는 표현들이 반복적으로 공론장에 등장하면서, 한국 정치의 언어는 이례적인 수준으로 극단화되고 있다. 이 같은 수사적 고조는 한편으로는 체제 수호의 절박감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절제와 사려 깊음이 무너졌음을 반증한다.

‘파면’이냐 ‘기각’이냐를 넘는 본질적 질문

헌정의 위기를 진단함에 있어, 단지 윤석열 개인의 정치적 운명을 중심에 두는 것은 오히려 본질을 흐릴 수 있다. 지금의 위기는 리더십의 도덕성과 법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이 정점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은 단지 정치적 심판이 아니라, 국민과 헌정 질서 사이의 신뢰 회복을 위한 최소한의 절차라는 점에서 중대한 의미를 지닌다.

이제 질문은 ‘윤석열이 파면될 것인가’가 아니라, ‘헌재가 그 기능을 다하고 있는가’, ‘헌법적 통치 원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가’라는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 본질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한동안 ‘비정상의 일상화’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반복되는 광장, 사라진 제도정치

광장은 오늘도 말하고 있다. 그 말은 과거 촛불 집회나, 5.18, 4.19에서처럼 국가 권력의 폭주를 견제하고자 하는 민중의 표현이다. 그러나 지금의 광장은 그 어느 때보다 피로하다. 정당은 광장에서 당무를 보고, 시민은 노숙과 단식을 통해 헌정질서를 외친다.

이는 제도 정치의 총체적 실패다. 국회는 정당의 권력 투쟁에 휘둘려 정족수의 숫자 정치를 반복하고 있고, 헌재는 ‘정무적 고려’라는 말 속에 사법적 판단을 미루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 같은 침묵은 더 큰 불신을 낳는다. 시스템이 무너질 때 광장은 뜨거워지고, 광장의 반복은 민주주의의 실패로 귀결된다.

“벌금은 국민 몫이고, 면죄부는 권력자 몫인가”…한덕수 탄핵 기각에 이재명, 날선 일침 사진=2025 03.24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경제와 민생, 통치 신뢰의 붕괴가 불러온 사회 전방위 위기

정치 위기는 곧 경제 위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최근 국내 증시의 불안, 내수 침체, 고금리 지속, 자영업자의 연쇄 폐업 등은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과 정치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정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위협하고, 사법 시스템이 신뢰받지 못하는 상황은 사회 전반의 심리적 안정성을 크게 흔든다. 지금 이 순간도, 수많은 국민이 '정상성'을 갈망하지만, 제도는 그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마지막 고비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다. ‘헌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국가는 누구의 것인가’. 정파적 입장을 떠나, 권력의 사유화와 헌정 질서의 훼손, 제도의 침묵에 대해 사회 전체가 답해야 할 시점이다.

이 고비를 넘지 못하면, 한국 민주주의는 한 세대가 피 흘려 쌓아온 제도의 토대를 잃을 수 있다. 정치권은 ‘헌법의 수호자’로서 책임 있는 행동에 나서야 하고, 헌법재판소는 그 책임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느 한 사람의 정치 생명이 아니라, 이 국가가 다시 법치와 정의의 이름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국민 앞에 증명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