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드 기획⑥] “민주주의의 피로, 광장의 정치와 공론장의 한계”

시민 저항의 반복과 제도정치의 기능 부재에 대한 경고

2025-03-25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 광장이 또다시 열렸다. 천막이 쳐지고, 단식이 이어지며, ‘헌정 수호’의 구호가 도심을 메운다. 그러나 반복되는 광장은 점점 더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왜 다시 광장에 서 있는가. 제도정치는 왜 기능하지 못하고, 시민은 왜 매번 거리에 나서야 하는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제도의 고장뿐 아니라, 공론장의 피로에서도 비롯된다.

광장의 반복, 위기의 증거인가 희망의 징후인가

2025년 봄, 광화문에 설치된 더불어민주당의 천막당사는 단지 정당의 정치적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제도정치가 더 이상 갈등을 흡수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시민 참여가 공적 경로를 잃었음을 보여주는 구조적 현상이다.

광장은 언제나 민주주의의 기적을 만들었다. 4·19, 6월 항쟁, 촛불 집회까지 한국 현대사의 전환점마다 광장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광장은 기적이 아니라 ‘습관’처럼 반복되고 있다. 습관화된 저항은 ‘의지’이기 이전에 ‘무력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공론장은 존재하는가

건강한 민주주의는 광장이 아니라 공론장에서 작동한다. 다양한 입장과 이해가 제도 안에서 토론되고 조율되는 과정, 그것이 곧 민주주의의 본령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사회는 공론장이 점점 협소해지고, 광장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SNS의 정파적 여론, 진영화된 언론 보도, 극단적 정치 언어는 공론장을 마비시켰다. 토론은 사라지고, 선언만 남았다. 정치적 메시지는 청중을 설득하기보다는 적을 규정하기 위한 도구로 변했다. 이처럼 공론장이 기능을 멈춘 사회에서, 광장은 저항의 마지막 수단으로 되돌아온다.

제도정치의 무능, 시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다

광장이 열릴 때마다, 정치권은 ‘국민의 뜻’을 외친다. 그러나 그 외침 뒤에 감춰진 현실은, 제도정치가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다는 고백에 가깝다. 국회는 정당 간 대립 속에서 헌정적 책무를 방기하고, 사법은 판단을 미루며 침묵한다.

그 결과, 사회는 다시 광장에 책임을 전가한다. 시민은 스스로 정의를 외치고, 국정의 정상화를 요구하며, 법의 판단을 촉구한다. 문제는 그 과정이 거듭될수록 정치의 ‘외주화’가 고착된다는 점이다. 정치는 책임을 지지 않고, 시민은 반복적으로 소모된다.

 

피로감과 냉소의 악순환

시민 저항은 민주주의의 생명력이다. 그러나 그것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구조는 오히려 민주주의의 피로를 가중시킨다. 일상은 중단되고, 삶은 정치에 함몰되며, 광장은 ‘정치가 부재한 상태’에 대한 항의이자, ‘정치에 대한 포기’의 징후가 된다.

지속적인 동원은 감정의 소진을 초래하고, 그것은 곧 정치적 냉소로 이어진다. 냉소는 무관심보다 위험하다. 무관심은 거리를 두지만, 냉소는 제도를 부정하고 질서 자체를 붕괴시킨다. 민주주의는 참여로 살지만, 그 참여가 반복되는 절망일 때, 체제 전체의 회복력은 급격히 약화된다.

광장을 넘어 공론장으로

지금 필요한 것은 다시 공론장을 복원하는 일이다. 감정을 중첩시키는 광장의 정치가 아니라, 이견을 전제로 토론하고 설득하는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 정당은 다시 입법 기능의 중심으로 돌아와야 하며, 시민사회는 단발적 분노가 아닌 구조적 개입으로 진화해야 한다.

광장은 위기의 증상이다. 그것이 계속되는 한, 우리는 회복되지 못한 민주주의 속에 살고 있다는 뜻이다. ‘저항’ 이후에 ‘협의’가 오지 않으면, 그 정치는 구조적 파탄을 되풀이할 것이다. 이제는 다시 묻자. 민주주의는 어디에서 작동하는가. 그 답은 더 이상 거리 위가 되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