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렌드 기획①] 권한대행 체제의 시험대, 헌정질서의 위기와 헌법재판소의 시간

2025-03-26     박준식 기자

 

[KtN 박준식기자] 한덕수 총리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이후,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정치와 헌법’ 사이의 균열 위에 놓였다. 대통령 직무 정지라는 초유의 상황 속에서 가동되는 권한대행 체제는 과연 헌정질서를 지키고 있는가. 헌재의 결정은 기각이었지만, 면죄부는 아니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책임의 부재’를 허용하지 않는 제도적 명료함과, 헌정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냉정한 성찰이다.

헌재 결정 이후, ‘정치의 책임’은 누구에게로 향하는가

대한민국 정치가 헌정사적 기로에 서 있다.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된 상황에서 권한대행 체제가 가동되는 지금, 정치는 헌법의 틀 안에서 유효한가라는 본질적인 질문과 마주했다. 특히 최근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심판을 기각하면서도, 그의 위헌적 직무유기 사실을 명시한 결정문은 정치권과 시민사회 모두에 복합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헌재는 총리의 헌법재판관 미임명이 명백한 위헌임을 인정했지만, ‘파면에 이를 정도의 중대성’은 부족하다는 이유로 탄핵을 기각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면죄부가 아닌 법적 경고였다. 헌법의 명령을 이행하지 않은 권한대행 체제에 대한 무기력한 수용은, 결국 헌정의 위기를 구조화시키는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권한만 있고 책임은 희미한, 권한대행 체제의 모순

대통령 부재 상황에서 가동되는 권한대행 체제는 헌정 체계의 예외적 안전장치이지만, 이번 사태는 그것이 정치적 책임 회피의 통로로 전락할 수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수차례 지연하거나 거부한 총리의 행위는, ‘법률 위반’으로 규정되기에 충분했음에도 헌재는 이를 정치적 책임으로 환원했다.

문제는 이 체제가 장기화되면서, 권한대행 체제가 통치 공백을 메우기보다 헌정 혼란을 고착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총리의 권한은 확대되었으나, 그에 따른 정치적·법적 책임은 분산되고 있는 지금, 행정부는 ‘결정하지 않는 체제’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헌법 질서의 공백이자, 통치 구조의 와해에 가까운 상황이다.

“벌금은 국민 몫이고, 면죄부는 권력자 몫인가”…한덕수 탄핵 기각에 이재명, 날선 일침 사진=2025 03.24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윤석열 탄핵’이라는 정치 시계의 압력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을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된 일련의 정황을 ‘내란 사유’로 규정하며, 파면을 요구하고 있다. 탄핵안 가결 이후 100일, 변론 종결 이후 30일이 지났지만,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선고 일정을 특정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정치적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한국을 ‘민감 국가’로 지정했고, 국내에서는 광범위한 산불 재난 대응과 공공기관 인사 논란이 연이어 터지고 있다. 국정의 방향성과 책임 구조가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헌법재판소의 침묵’은 헌정질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다.

국정 시스템의 탈형식화, ‘알박기 인사’의 구조

권한대행 체제에서 추진되고 있는 일련의 고위 인사는 이른바 ‘정권 말기 알박기’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전직 여당 의원, 대통령실 출신 인사, 당협위원장 출신 인물들이 공공기관 주요 보직에 잇따라 임명되며 공공성·전문성 기준이 실종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장관 공석이 장기화된 여성가족부 산하기관마저도 정치권 인맥으로 채워지는 상황은 권력 말기의 ‘인사 유산화’ 시도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공공기관이 무력화되고, 자율성과 독립성을 상실한다면 이는 단지 인사 실패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정권의 ‘퇴장 과정’이 헌정의 규범을 벗어나 자의적 권력 연장의 통로로 전환되는 순간, 그것은 단순한 정치적 유산이 아니라 헌정 파괴의 서막이 된다.

정치가 회피한 책임, 헌법재판소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탄핵은 단지 정치적 반격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을 어긴 권력에 대한 제도적 판단이며,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복원하기 위한 최후의 조치다. 그러나 지금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지연되는 가운데, 정치적 불확실성과 헌정 위기는 병행되고 있다.

헌재는 헌법의 명령을 유예할 권한이 없다. 헌법이 부여한 책무를 회피한다면, 헌재 스스로가 헌법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주체가 될 수 있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정치가 회피한 책임을 헌재가 명확히 끌어안는 일이다. 그 결정의 순간은 단지 한 대통령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