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공정성 기획] 대리점법 10년, 제도는 있었지만 권리는 없었다

법은 명시했으나, ‘을’은 여전히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 10년 된 ‘남양유업 방지법’의 한계…대리점법 개정이 필요한 이유

2025-03-27     김 규운 기자
2013년, 남양유업 사태는 한국 유통산업의 어두운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사진=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김 규운기자] 2013년, 남양유업 사태는 한국 유통산업의 어두운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유통기한 임박 제품의 강제 납품, 판촉 인력 비용의 전가, 일방적 계약 해지. 일련의 행태들은 대리점이 얼마나 쉽게 구조적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해,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시장의 현실은 바뀌었는가. 제도는 존재하지만, 권리는 여전히 유예된 채로 남아 있다.

공정거래라는 이름 아래의 비대칭 구조

현행 대리점법은 불공정 행위를 제한하고 거래 관행을 개선하겠다는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실효성의 한계는 구조적으로 내재돼 있다. 공급자와 대리점 간 거래상 지위의 현격한 격차는 여전히 본사의 일방적 계약 조건 변경, 계약 해지, 일률적 납품 강요 등을 가능하게 만든다.

대리점은 사실상 계약상 불이익을 감수하더라도 이를 거부할 수 있는 협상 여력이 없다. 법은 명시했지만, 거부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없는 구조는 제도의 권위를 무력화시킨다. 계약 갱신의 권한은 본사에 집중되고, 조건 변경 또한 공급자의 판단에 따라 일방적으로 이루어진다.

단체 결성, 제도 이전에 침묵을 강요당하는 권리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대리점의 집단적 권리 행사조차 구조적으로 제약받고 있다는 점이다. 가맹사업과 달리, 대리점 관계에서는 사업자단체 결성 자체에 대한 방해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 공급업자가 대리점의 협의회 가입을 저지하거나, 단체 활동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하는 ‘보복적 계약 관행’은 사실상 시장에서 대리점의 결사의 자유를 무력화하고 있다.

이는 단지 거래상의 불이익 문제가 아니라, 헌법적 권리마저 시장 논리 아래 유예되고 있는 현실이다. 법은 침묵하지 않지만, 침묵을 유도하는 거래 구조는 법보다 앞서 작동한다. 대리점들이 단체 결성에 소극적인 이유는 권리 부재가 아니라, 권리를 행사했을 때 따르는 리스크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이다.

현장의 목소리: 제도의 균열을 다시 드러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가 주최한 ‘대리점 피해사례 발표회’는 침묵의 구조를 드러내는 또 하나의 계기가 되고 있다. 롯데 델몬트, LG생활건강, KGM 등 다수 브랜드 대리점들이 참여해 본사의 일방적 공급, 불이익 통보, 계약 해지 등의 구체적 피해 사례를 공유할 예정이다.

이는 제도의 미비점을 단순히 진술하는 자리가 아니라, 불공정한 시장 권력이 어떻게 현실을 잠식해왔는지를 집단적으로 증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래의 자유와 계약의 강제 사이

‘대리점법’은 자유롭고 공정한 거래 환경을 구현한다는 목적을 내세우고 있지만, 거래의 자유는 계약의 실질이 아닌 형식에만 적용되고 있다. 법은 ‘공정한 계약’을 보장한다고 말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거부할 수 없는 계약’만 존재한다. 단지 법 조항의 미비가 아니라, 불균형한 권력 구조 속에서 계약이 사실상 강제되는 현실을 반영한다. 공정거래는 선언이 아니라, 실질적 권리의 행사 가능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제는 보호가 아니라 구조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현재의 대리점법이 불공정한 행위를 금지하는 규범이라면, 개정은 불균형한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수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대리점 계약의 갱신권 명시 및 자동연장 조항 도입

▶단체 결성 및 교섭 활동에 대한 법적 보호 조항 강화

▶계약 해지 시 사전 통보 및 사유 명확화 의무 부과

▶보복성 불이익 행위에 대한 형사적 책임 구조 강화

궁극적으로 거래 질서의 균형은 개별 사건의 제재가 아니라, 권력 비대칭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에서만 가능하다. ‘을’을 보호하는 법이 아니라, ‘을’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조건을 보장하는 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