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트렌드 기획①] 디지털과 회화의 공존, 데이비드 호크니와 현대 예술의 미래

87세 거장의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점령기… 고전과 기술, 감성과 기기의 경계 허물다

2025-03-27     임민정 기자
미술의 디지털화, 새로운 감각의 언어가 되다. 사진=David Hockne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민정기자] 오는 4월 9일부터 8월 31일까지 파리 루이 비통 파운데이션 전체 공간을 점령하는 대규모 전시가 열린다. 전시의 주인공은 20세기와 21세기를 아우르는 회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 데이비드 호크니다. 총 11개 전시실, 400여 점에 달하는 작품 규모는 단순한 회고전을 넘어선다. 이 전시는 작가의 말처럼 “지금껏 가장 큰 전시이자, 가장 중요한 전시”다.

아이패드로 그리는 회화, 디지털의 정서화

이번 전시의 중심은 호크니가 2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시도한 디지털 회화다. 그는 iPad를 회화 도구로 받아들이며, 디지털 드로잉을 하나의 미학으로 끌어올렸다. ‘220 for 2020’ 시리즈를 비롯해 가족과 지인들을 묘사한 다양한 디지털 초상화들은 인쇄되어 액자에 걸리는 형식으로 소개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디지털 드로잉들이 단순한 테크놀로지 실험이 아닌, 감성과 시간의 농도를 담은 ‘회화적’ 결과물로 기능한다는 데 있다.

호크니의 디지털 작업은 기계적 반복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의 아이패드 드로잉은 손끝의 떨림과 눈의 응시가 살아 있으며,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회화적 육감을 견지한다. 이는 기술이 예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촉각을 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공간 연출과 감각의 확장: 오페라적 시각예술

전시의 10번 갤러리는 오페라 무대 연출자로서 호크니의 감각이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지점이다. 1970년대부터 이어져온 무대미술 작업이 새로운 시청각적 경험으로 구현된다. 이 공간은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장소가 아니라, 음악과 시각이 맞닿는 총체적 예술 공간으로 작동한다. 이는 미술관 전시가 감상 위주에서 감각적 몰입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트렌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예술에서 ‘노년’과 ‘기술’의 의미

이번 전시는 단순한 개인작가의 회고전이 아니다. ‘노년의 창작’과 ‘기술 수용’이라는 현대 예술계의 주요 화두를 동시에 건드린다. 특히, 87세라는 연령에도 불구하고 최신 기술을 자기화한 호크니의 작업은 나이듦이 결코 예술의 퇴장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다. 예술가의 시간은 연대가 아니라 감각의 지속성과 실험성에 의해 측정된다는 사실이 이 전시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또한, 디지털 도구의 활용이 예술의 깊이를 얕게 만들 것이라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호크니는 그 누구보다 회화적 전통과 미학을 깊이 있게 담아내고 있다. 기술을 수용하되, 거기에 예술가의 정신을 담아내는 방식—바로 그것이 오늘날 디지털 예술의 미래 방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술의 디지털화, 새로운 감각의 언어가 되다

‘David Hockney, 25’ 전시는 기술의 진보가 예술의 감성을 위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오히려 기술은 감각의 새로운 언어가 될 수 있다. 고전적 회화의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회화의 본질을 구현한 호크니의 작업은 예술계에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이제 예술은 매체나 형식의 논쟁을 넘어서, ‘어떻게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내는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다. 그리고 데이비드 호크니는 그 질문 앞에서 가장 선명한 대답을 내놓은 예술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