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렌드] 파과, 죽음의 정점에서 탄생하는 감정의 시네마
“죽이기 위해 살아온 여자와, 죽기 위해 따라온 남자” 장르의 문법을 파괴한 감정 서사의 반역
[KtN 김동희기자] 그녀는 ‘죽이는 일’로 살아남았다. 그는 ‘죽이고 싶다’는 집착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서로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순간—한국 액션 장르에 균열이 일어난다. 민규동 감독의 신작 <파과>는 액션이라는 껍질로, 감정과 윤리, 쇠퇴와 애도의 서사를 숨긴다. 그리고 한국 영화가 오랫동안 회피해온 질문을 던진다. 폭력은 누구의 것인가. 나이든 여성의 몸은, 왜 아직도 ‘스크린의 바깥’에 있어야 하는가.
‘킬러 조각’, 영화가 지운 신체를 되살리다
60대 여성 킬러. 이 단어만으로도 <파과>는 기존 한국 액션 서사의 프레임 바깥으로 나간다. 이혜영이 연기한 ‘조각’은 40년 동안 ‘신성방역’이라는 조직에서 비밀리에 인명을 제거해온 전설적인 존재다. 그러나 영화가 그리는 ‘조각’은 폭력의 미학적 영웅이 아니다. 오히려 이 인물은 쇠퇴하는 신체, 고립된 감정, 무감각한 일상 속에 갇힌 존재로 그려진다.
이혜영은 부드럽지만 결정적인 움직임, 말보다 많은 침묵으로 이 캐릭터를 구성한다. 그녀의 몸은 날카롭지 않다. 다만 오래도록 눅눅하게 배어온 시간의 흔적처럼 느릿하게 흘러간다. 이 액션은 스펙터클이 아니라, '살아 있음' 그 자체에 대한 저항처럼 다가온다.
‘투우’, 폭력의 유산을 증오로 상속받은 남자
김성철이 연기한 투우는 ‘복수’라는 장르적 도식을 따르지만, 그 내면은 보다 복잡하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조각에게 잃고, 20년간 그를 쫓으며 킬러가 된 그는 단순한 적대자가 아니다. 조각을 죽이기 위해 살았지만, 동시에 조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의 감정은 증오와 동경, 복수와 애착이 얽힌 복합적 구조다.
<파과>는 이들의 관계를 결코 단순한 대결 구도로 묘사하지 않는다. 조각과 투우 사이에 흐르는 것은 살의가 아니라 감정이다. 마지막 총격전조차, 감정을 말로 대신할 수 없는 자들의 마지막 ‘언어’처럼 기능한다.
장르 해체와 정서 재건: 민규동의 서사 전략
민규동 감독은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세밀한 정서극부터, <간신>의 미장센, <허스토리>의 윤리적 구조까지 다양한 결을 실험해온 연출자다. <파과>는 이들 작업의 축적 위에 서 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액션 장르의 익숙한 문법을 거의 제거한다.
빠른 전개, 감정적 반전, 과잉된 클라이맥스는 없다. 대신 선택된 것은 감정의 서서한 침식, 고요한 고조, 그리고 묵직한 여운이다. 이 감정은 음악을 통해 증폭된다. 오케스트라 사운드는 장면의 긴장을 높이는 수단이 아닌, 인물의 내면을 ‘함께 호흡하는 악기’처럼 다룬다.
베를린이 주목한 감정의 정치학
<파과>는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섹션에 초청되었다. 그 이유는 단순한 설정의 참신함 때문만이 아니다. 지금 유럽의 주요 영화제는 ‘노년’, ‘여성’, ‘폭력’, ‘윤리’라는 키워드를 새로운 미학의 축으로 삼고 있다. <파과>는 그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조각이라는 캐릭터는 나이든 여성의 무력함을 보이기보다, 사회가 외면해온 여성 신체의 잔존성과 감각을 복원한다. 그리고 투우는 그런 감각과 마주함으로써 자신이 품은 폭력의 무게와 윤리를 되묻게 된다.
이제 한국 영화는 ‘감정의 액션’을 준비해야 한다
<파과>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파격’이 아니라, 한국 장르 영화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노년 여성은 언제까지 비극의 조연일 것인가?
▶액션은 언제까지 젊고 남성적인 신체의 전유물이어야 하는가?
▶복수는 언제까지 목적이고, 감정은 언제까지 장치여야 하는가?
<파과>는 이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감정과 해석, 침묵과 체류를 통해 서서히 응답한다. 그리고 그 응답은 지금 한국 영화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