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트렌드] 르망의 유산, SUV로 달리다: 벤틀리 ‘Apex Edition Bentayga’의 정체성 실험
모터스포츠의 전설이 럭셔리 SUV로 재현될 때, 그것은 취향인가 역사인가.
[KtN 김상기기자] 고성능 SUV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그러나 벤틀리는 여전히 그 안에 ‘역사’를 입히고, ‘한정성’을 더해 존재감을 확장한다. 2024년 공개된 Apex Edition Bentayga는 단지 강력한 퍼포먼스를 내세운 SUV가 아니다. 그것은 르망(Le Mans)의 유산, 브랜드 충성도, 그리고 소유자의 정체성을 모두 설계한 하나의 ‘이동하는 기념비’다.
르망에서 SUV까지, 브랜드 내러티브의 확장
이 특별한 Bentayga는 단 20대만 제작된 Apex Edition 중 하나로, 2023년 ‘르망 컬렉션’ 컨티넨탈 GT를 보유한 고객만이 구매할 수 있는 조건이 붙는다. 다시 말해, ‘소유’는 단순한 구매 행위가 아닌, 역사에의 참여 자격으로 전환된다.
이 모델의 실차 주인인 북아일랜드의 마크 킹(Mark King)은 2010년부터 벤틀리를 수집해 온 열혈 고객이다. 그가 보유한 컨티넨탈 GT 르망 에디션과 동일한 색상 조합(Verdant Green과 Moonbeam 스트라이프)을 입은 이 Bentayga는, 한 대의 SUV이자 하나의 스토리이다.
고성능 SUV의 정점, 그러나 여백은 미학이다
Apex Edition은 기본적으로 Bentayga S를 기반으로 한다. 4.0L V8 엔진은 542마력, 0-60mph 가속은 단 4.4초. Bentley Dynamic Ride 시스템, 리어 휠 스티어링,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22인치 머리너 카본 휠까지—성능 면에서 보면 ‘가장 강력한 Bentayga’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 차량의 진짜 정체성은 숫자가 아니다. ‘과시적 제원’보다 중요한 것은 레이싱 유산을 향한 세심한 디테일이다. 실내는 벨루가(Beluga) 가죽과 디나미카(Dinamica) 패브릭으로 마감됐고, ‘핫스퍼’(Hotspur) 색상의 스티치가 르망의 긴장감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실내는 철저히 운전자 중심이지만, 과도하지 않다. 여백의 미학이 성능의 서사를 배려한다.
벤틀리의 전략: 컬렉터가 브랜드를 설계하는 시대
Bentley가 Apex Edition을 통해 보여주는 전략은 단순한 ‘고성능 SUV’의 확장이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를 소비하는 방식’의 전환이다. 벤틀리는 충성도 높은 고객과 함께 브랜드 서사를 쌓아간다. “Apex는 당신이 만든 이야기의 마지막 장입니다”라는 식의 접근이다.
마크 킹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차고에는 GT3-R, Flying Spur, Bentayga Speed가 있으며, 그 중 한 대는 10만 마일 이상 주행을 마친 상태다. 그에게 차량은 정지된 수집품이 아니라 움직이는 역사서다. 벤틀리는 이제 고객의 생애를 기록하고, 그 생애에 의미를 부여하는 브랜드가 되려 한다.
퍼포먼스의 시대 이후, 자동차는 무엇이 되는가
Apex Edition Bentayga는 분명 퍼포먼스를 갖췄지만, 이 차량이 진정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속도’가 아니다. 그것은 감정, 소유욕, 기념, 정체성의 층위를 가진 ‘오브제’다. 따라서 이 SUV는 전통적인 카테고리로 분류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은 차량 형태의 헤리티지 아트에 가깝다.
문제는 이러한 차량들이 과연 브랜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가에 있다. ‘수집용 차량’은 대중적 브랜드 스토리텔링보다는 특정 계층의 테이스트 강화에 머무를 가능성도 높다. 벤틀리가 이 전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판매량이 아니라 브랜드 상징 체계의 고급화이며, 그 과정은 결코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다.
퍼포먼스 이상의 시대, 브랜드는 ‘서사화된 SUV’를 요구한다
Apex Edition Bentayga는 차량 이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기억되고 싶은 방식'으로 브랜드를 재편하는 실험이며, 벤틀리가 향후 어떤 정체성을 지향하는지에 대한 상징적 예고다.
SUV는 이제 더 이상 단지 ‘멀티 퍼포먼스’를 위한 탈것이 아니다. 그것은 ‘브랜드의 기념비’이며, 감정과 기억을 저장하는 이동 가능한 박물관이 된다. 벤틀리는 그 흐름의 선두에 서 있다. Apex Edition은 그 출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