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재난은 정치가 아니다: 산불 사태가 드러낸 정쟁 구조의 위기
국가 재난을 둘러싼 정쟁 프레임…정치의 기능은 어디에 있는가
[KtN 김 규운기자]산불 재난은 정치의 무능과 무책임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수천 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생명이 위협받는 국가적 비상상황에서도, 정치권은 여전히 상대를 향한 비난과 공세에 몰두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대응을 ‘이재명 대표 감싸기’로 규정하며 정치적 공세를 이어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힘이 재난 상황을 정쟁의 소재로 삼고 있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정쟁의 프레임이 국가 재난마저 정치적 갈등의 장으로 삼고 있는 현실은, 현재 한국 정치가 구조적으로 신뢰를 상실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재난의 정치화: 책임 회피인가, 전략적 소모전인가
산불 대응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여야 간 공방은, 그 자체로 국가적 재난 대응 역량에 대한 신뢰를 잠식시킨다. 국민의힘이 ‘야당 지도자 보호’라는 정치 프레임을 내세운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무고한 희생의 정치적 이용’이라 규정했다. 문제는 이 공방이 단순한 정파적 대립을 넘어서, 재난에 대한 국가 책임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프레임 전환은 책임을 분산시키고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데에는 효과적일 수 있으나, 재난 상황의 본질—즉, 정부의 대응 체계, 복구 속도, 피해자 보호 등 실질적 민생 문제—를 정치권 스스로 외면하게 만든다는 데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리더십의 실종: 위기 대응의 중심은 누구인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요구되는 덕목은 정치 리더십의 신뢰 회복과 국민 통합이다. 그러나 이번 산불 대응 과정에서 정치권은 명확한 중심축을 보여주지 못했다. 재난 현장에서의 실질적 조율보다는, 발언의 수위와 정치적 책임 공방이 앞섰고, 여야 모두 현장 중심의 공적 리더십보다는 의회 내 대치 국면에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특히 여당의 경우, 야당을 향한 강도 높은 비판을 지속하면서도, 정작 ‘재난 극복을 위한 구체적 지원 방안’에 대한 실질적 대안 제시는 미흡한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여당이 책임 정치의 주체로서 국민 앞에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되묻게 만든다.
구조화된 정쟁의 피로감, 국민은 어디에 있는가
산불로 인한 희생자와 이재민의 목소리는 정쟁의 언어 속에 묻혔다. 피해 규모가 심화될수록 국민은 정책보다 정쟁, 책임보다 공방에 몰두하는 정치의 피로감을 더욱 선명하게 체감하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조차 정쟁을 우선하는 정치 구조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기능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정치가 고통받는 국민을 위로하지 못하고, 재난을 프레임화하는 도구로만 소비할 때, 공공성은 실종된다. 정치권 전반에 대한 신뢰 저하, 민심 이탈, 극단화된 여론 지형은 그 후속 결과다. 이미 시민사회는 이러한 구조화된 피로감에 대해 피상적인 정쟁이 아닌, 실질적 대책과 회복적 정치의 실현을 요구하고 있다.
정쟁을 넘어선 ‘회복 정치’의 필요성
이번 산불 사태는 단지 자연재해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정치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리더십이 필요한지를 가늠하는 기준선으로 작용한다. 정치가 재난의 본질을 직시하고, 실질적인 지원과 회복을 중심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회복될 수 없다.
이제는 정쟁이 아닌 회복의 정치로 중심을 이동시켜야 할 시점이다. 여야 모두 피해 복구를 위한 신속한 추경 편성과 제도적 보완에 초점을 맞추고, 그 위에서만 국민 앞에 설 수 있다. 국민의 고통은 정치적 공방의 소재가 아니라, 정치가 가장 먼저 응답해야 할 본질적인 의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정치는 위기에서 시험받는다. 이번 산불 대응은 그 시험에 있어 정치권 전반이 어떤 답을 내놓는지를 국민이 지켜보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