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트렌드 기획③] ‘글로벌’은 브랜드에게만 기회다

K-콘텐츠의 해외 확장과 소진의 이중성, 살아남는 이름은 무엇이 다른가

2025-03-29     홍은희 기자
배우 아이유가 넷플릭스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제작발표회에 참석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홍은희기자] K-콘텐츠가 더 이상 국내에 국한된 문화 자산이 아니게 된 지는 오래다. K-팝은 세계 무대에서 더 이상 ‘이례적인 존재’가 아니고, K-드라마는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한국 예능은 유튜브 클립을 통해 지역을 넘나들며 소비되고, 전 세계 틱톡 알고리즘은 K-스타를 추천 항목 최상단에 올려두고 있다. 확산은 자연스러워졌고, 국경은 더 이상 콘텐츠의 장벽이 아니다.

그러나 콘텐츠가 세계로 나아간다고 해서, 그 콘텐츠가 세계 속에 ‘정착’하는 것은 아니다. 이 빠른 유통의 이면에는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소진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다.

확산은 빨라졌지만, 콘텐츠는 쉽게 망각된다

K-콘텐츠는 지금도 수많은 해외 플랫폼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비되고 있다. <오징어게임>은 단숨에 세계를 뒤흔들었고, <더글로리>, <무빙>,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역시 플랫폼 순위를 장악한 바 있다. K-팝 그룹들은 월드투어와 빌보드 차트를 동시에 점령했고, 짧은 영상과 챌린지 콘텐츠를 통해 글로벌 팬덤을 형성했다.

그러나 그 뒤를 돌아보면, 의외로 남은 것이 많지 않다. 소비는 이루어졌지만, 기억은 짧았다. 콘텐츠는 유행했고 바이럴됐지만, 오래 회자되지는 못했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확산'과 '지속'은 전혀 다른 조건의 문제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알고리즘 중심 구조는 콘텐츠를 빠르게 지우기도 한다

이러한 소진 현상은 플랫폼 소비 구조에서 기인한다. 지금의 K-콘텐츠는 유튜브, 넷플릭스, 틱톡 같은 플랫폼 중심으로 소비되는데, 이들 플랫폼은 클릭률과 조회수, 시청 지속 시간에 기반해 콘텐츠를 배치한다. 이는 빠른 확산에는 유리하지만, 반복 소비와 장기 브랜딩에는 치명적인 구조다.

플랫폼은 계속해서 새로움을 요구하고, 알고리즘은 오래된 콘텐츠를 배제하며, 소비자는 즉시성과 흥미를 좇는다. 그 결과, K-콘텐츠는 소비된 뒤 ‘소유되지 않고 떠도는 콘텐츠’로 남게 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오징어게임3’ 등 올해 40여 편 신작 공개 사진=2025 02.04  넷플릭스 제공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브랜드로 구조화된 콘텐츠만이 살아남는다

그러나 이런 환경 속에서도 지속력을 갖는 사례는 존재한다. 대표적인 예가 방탄소년단이다. 이들은 활동을 멈추어도, 콘텐츠가 없더라도, 여전히 브랜드로 기능한다. 이는 그들이 단순히 음악을 생산한 아티스트가 아니라, 기억될 수 있는 정체성과 해석 가능한 메시지를 갖춘 브랜드로 성장해왔기 때문이다. 팬들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해석하고, 재가공하고, 다시 확산시킨다. 브랜드화된 콘텐츠는 이처럼 사용자에 의해 순환되며 생명력을 얻는다. 유행의 궤도에서 이탈해도, 정체성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다.

살아남는 콘텐츠: 서사, 정체성, 커뮤니티

글로벌 시장에서 살아남는 K-콘텐츠는 다음 조건을 갖고 있다.

▶첫째는 서사성이다. 콘텐츠가 반복 소비될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을 것.
▶둘째는 정체성이다. 누가 만들었는지, 어떤 브랜드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명확히 각인시킬 수 있을 것.
▶셋째는 커뮤니티 기반이다. 콘텐츠를 소비한 이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재생산하며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는 구조가 있을 것.

이 세 가지가 갖춰진 콘텐츠만이 글로벌 시장의 비정한 알고리즘을 견디고,
기억 가능한 브랜드로 정착할 수 있다.

산업의 다음 과제는 ‘기억 설계’다

K-콘텐츠는 지금도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브랜드로 살아남는다는 보장은 없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멀리 가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남는가다. 기억되지 않는 콘텐츠는 결국 소음으로 사라진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콘텐츠의 양이 아니라, 콘텐츠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전략이다.

다음 세대의 K-콘텐츠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더 많은 플랫폼에 진출할까”가 아니라, “어떻게 더 오랫동안 기억될 것인가”로.

 

그리고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K-콘텐츠는 비로소 ‘일회성 콘텐츠’를 넘어 글로벌 문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