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A] 침묵 속에서 울리는 시의 한 구절처럼, 허은선의 『Dancing with Silence 1』

사라지는 소리의 잔향, 혹은 보이지 않는 진동의 파장

2025-03-29     박준식 기자
[갤러리 A]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캔버스 위에 흩뿌려진 짙은 울트라마린의 흔적은 단지 색이 아니라 감정의 중력이다. 허은선(HUH EUN SUN)의 작품 『Dancing with Silence 1』은 소리 없는 움직임, 말 없는 언어, 그리고 존재와 부재 사이에 감도는 정서를 시각적으로 구성해낸다. 이 작품은 우리가 침묵이라 부르는 영역 안에 내재된 수많은 감각적 층위들을 응시하게 만든다.

작품 개요

작품명: Dancing with Silence 1

작가: 허은선 (HUH EUN SUN)

제작 연도: 2019

크기: 200×240cm

재료: 캔버스에 혼합재료 (금박 포함)

가격: 2억8천만 원

 

영감과 제작 배경

『Dancing with Silence 1』은 허은선 작가가 ‘침묵’을 주제로 삼은 대형 회화 연작 중 가장 상징적이고 근원적인 작업 중 하나로 평가된다. 허 작가는 내면의 정적, 무의 언어, 혹은 감정의 진폭을 시각적으로 번역하는 데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이 작품은 물리적인 소리가 없는 상태에서도 감각이 확장되고, 사유가 발화하는 ‘침묵의 역설’에 대한 탐구에서 출발했다.

작품이 탄생한 2019년은 작가가 ‘비가시성(invisibility)’과 ‘존재의 깊이’를 집중적으로 천착하던 시기였으며, 외부 세계와의 단절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포착되는 ‘내면적 공명’이 작업의 주요 동력이 되었다. 허 작가는 “침묵은 가장 큰 진동이며,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감각의 파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작품 제목에 담긴 의미

‘Dancing with Silence’라는 제목은 고요한 상태에 잠재된 역동성을 암시한다. 단지 정지된 침묵이 아니라, 그 안에서 끊임없이 파생되는 감정의 흐름, 감각의 율동을 포함한다. 이는 동양의 여백 미학과 서구 추상표현주의가 결합된 허 작가의 조형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침묵 속에서 춤추는 순간, 보이지 않는 감정이 형태를 갖춘다. 이 작품은 바로 그 형상화의 결정체다.

구도와 조형 언어

작품은 강렬한 청색이 화면의 상단을 차지하며 점차 아래로 스며드는 구성으로 전개된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푸른색의 농담은 중력과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은유하며, 여백과 채움, 질감과 공기 사이의 긴장 관계를 조율한다.

수직적으로 떨어지는 물감의 흐름은 마치 자연 현상처럼 자율성을 갖고 화면을 지배하지만, 그 안에는 섬세한 통제가 숨어 있다. 이 우연성과 질서의 교차는 허 작가 특유의 미적 균형감각을 드러낸다.

금박은 미세하게 화면에 침투하며, 고요 속에서 빛나는 소리의 입자처럼 기능한다. 시선이 머무는 지점마다 금박의 반짝임은 미묘한 시각적 리듬을 형성하고, 이 리듬은 곧 침묵의 언어로 전환된다.

예술적 기법과 창작 철학

허은선 작가는 하이드로락(hydrolaque) 기법과 금박을 결합하여 물성과 비물성을 교차시키는 독창적인 회화적 접근을 보여준다. 물감이 캔버스를 타고 흐르며 만들어내는 흔적은 단지 손의 움직임이 아니라, 시간의 작용 그 자체로 읽힌다.

작가는 물질의 성질을 그대로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초월하는 개념적 층위를 병치시킨다. 이는 물감이 물질을 넘어서 정신적이고 감각적인 파장을 생성하는 회화적 실험의 일환이다. 그녀에게 있어 회화는 감정을 구조화하는 언어이며, 그 구조 안에는 언제나 비어 있는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

허은선의 작품 세계 

『Dancing with Silence 1』은 허은선 작가의 대표작이자 ‘침묵’ 연작의 근간을 형성하는 작품이다. 이후 이어지는 다양한 버전의 Dancing with Silence 시리즈와 『Butterflies in the Stomach』, 『The Sea in the Sky』로 확장되는 조형적 여정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허 작가가 한국 현대회화의 추상적 언어를 세계적인 감각과 접목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가장 응축된 조형적 해답으로 작용한다. 침묵을 말하는 회화, 정적 속의 진동을 그려내는 그녀의 미학은 점차 국제적 무대에서도 그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갤러리 A 온라인 전시

갤러리 A의 온라인 전시는 ‘보이지 않는 감각, 들리지 않는 진동’을 테마로 하며, 디지털 환경 속에서 관람자의 감각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회화 경험을 제안한다. 『Dancing with Silence 1』은 이 전시의 핵심적인 조형언어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비물질적이고 개념적인 감각을 촉각적 경험으로 전환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디지털 플랫폼 상에서도 화면의 질감, 농담의 흐름, 금박의 반짝임은 마치 실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며, 관람자의 시선을 깊이 끌어들인다. 이는 단지 이미지가 아닌 감각의 시뮬레이션으로서 회화가 어떤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제안이 된다.

시사점과 감상적 여지

허은선의 『Dancing with Silence 1』은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작품이 아니라, 감정의 층위를 시각화하는 독립적인 언어로서 회화를 재정의한다. 관람자는 이 작품을 통해 고요 속의 흔들림을 느끼고, 색의 밀도와 여백의 구조 안에서 스스로의 감각을 투사하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소음과 정보의 과잉에 지친 이들에게 이 작품은 조용한 회복의 순간을 제공하며, 예술이 감각적 명상으로 기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다.

KtN 리포트

『Dancing with Silence 1』은 허은선의 미학적 핵심을 응축한 회화다. 침묵이라는 무형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구체화하는 이 작업은, 회화가 감각을 조직하고 감정을 구성하는 언어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동양적 여백의 미학, 서양적 조형 실험, 그리고 현대인의 심리적 풍경을 하나의 화면 안에 응축시킨 탁월한 성과로, 한국 현대미술의 미학적 성취와 세계미술사적 맥락 안에서의 진입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중요한 예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