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트렌드 기획①] 가격 전략의 종언과 ‘이익 있는 볼륨’의 시대
“가격을 올려도 팔리지 않는다”… 소비재 산업, 구조적 혁신에 나서다 “소비자, 더 이상 가격 인상에 반응하지 않는다” 소비재 산업, 구조적 전환의 정점에 서다
[KtN 임우경기자] 글로벌 소비재 산업이 전례 없는 구조적 전환의 길목에 접어들었다. 가격 인상이라는 전통적 해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단기적 수익 방어 전략은 소비자 신뢰를 갉아먹는 양날의 검이 되고 있다. 딜로이트가 최근 발표한 ‘소비재 산업 트렌드’ 보고서는 수익성과 성장성의 이중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이 어떤 전략적 진화를 시도해야 하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보고서가 제시한 핵심은 명확하다. 제품 포트폴리오의 정교한 구성, 수요 창출 전략의 디지털화, 조직 효율성의 근본적 재설계. 이는 단순한 전략 변경을 넘어, 소비재 산업 전반의 생존 기반을 재정립하는 ‘시스템 전환’의 선언이다.
‘가격의 시대’는 저물고, ‘가치 기반 믹스’가 부상하다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소비재 기업들은 비용 상승을 상쇄하기 위해 가격 인상에 기대어 왔다. 그러나 2025년 현재, 소비자는 과거와 같은 수용력을 보이지 않는다. 체감 물가와 실질 구매력 사이의 괴리는 소비자의 선택을 더욱 정교하게 만들고 있으며, 가격에 대한 민감도는 신뢰의 붕괴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품 믹스의 전략적 재배열’이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부상했다. 고부가가치 제품의 비중 확대, 틈새 소비자층을 겨냥한 프리미엄 라인 강화, 특정 이벤트 기반 소비 패턴을 활용한 기획 제품 출시 등은 모두 정밀한 타깃팅에 기반한 포트폴리오 전략의 일부다.
흥미로운 점은 고성과 기업일수록 제품 믹스의 수익성을 ‘정교하게 조율’하는 데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고가 제품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기대 가치와 제품 속성 간의 이상적인 균형을 설계하는 과정이다.
디지털 기반 수요 창출, 브랜드 충성의 공식을 다시 쓰다
제품 믹스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시장의 관심은 이제 ‘이익 있는 볼륨(Profitable Volume)’, 즉 수익성을 담보하는 수요 창출에 집중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정밀 분석(Precision Analytics)과 디지털 채널 최적화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리테일 미디어, 타깃 콘텐츠 마케팅, AI 기반 예측 모델은 전통적 광고와 프로모션 전략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딜로이트에 따르면, 조사 응답 기업의 70%가 마케팅 투자 수익률 제고를 위해 정밀 분석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소비자 니즈에 대한 데이터 기반의 설득’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특히 주목할 전략은 가격 패키지 아키텍처(PPA)다. 동일 제품에 대해 다양한 용량과 가격대를 설계하여 소비자 선택권을 확장시키고, 구매 장벽을 유연화하는 접근이다. 이는 소비자의 ‘가치 민감성’을 공략하는 정교한 가격 전략이며,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의 관계를 재정의하는 중요한 전술로 떠오르고 있다.
조직 효율성과 기술투자, 미래 대응을 위한 필수조건
이러한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선, 결국 조직의 자원 운용 방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딜로이트 보고서는 이를 ‘플라이휠형 비용 절감 구조(Flywheel of Cost Savings)’로 정의하며, 디지털화와 자동화를 통해 지속 가능한 자원 순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강조한다.
특히 AI에 대한 전략적 투자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조건이 되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고성과 기업의 85%가 AI 도입을 확대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수는 마케팅과 백오피스 영역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해 의사결정 구조를 간소화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기술을 ‘도입’하는 수준을 넘어서, AI 기술을 통해 조직의 구조적 민첩성을 재설계하고, 미래의 일(work)의 본질에 대비하는 과정에 돌입했다. 효율성과 창의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러한 전략은, 단순한 생산성 향상이 아닌 경쟁우위의 지속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익 있는 성장은 전략이 아닌 체계의 문제다'
2025년, 소비재 산업은 또 한 번의 중대한 전환점을 지나고 있다. 과거처럼 가격을 조정하거나 마케팅을 확대하는 수준의 대응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이제는 시스템 자체를 재정립해야 하는 시기다. 제품 전략, 마케팅, 조직 구조 전반에서 기술과 데이터 기반의 정밀함이 요구되며, 이는 단순히 트렌드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산업의 생존 공식을 다시 쓰는 행위에 가깝다.
‘Profitable Growth’는 새로운 경영 구호가 아니다. 그것은 이제 기업의 체질을 규정하는 기준이며, 미래 대응을 위한 판단력의 척도다. 제품 믹스를 섬세하게 설계하고, 소비자 수요를 디지털로 이해하며, 효율성을 기술로 완성하는 기업만이 다음 10년을 설계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