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렌드 기획③] 헌법재판소의 침묵과 권한대행 체제… 헌정 시스템의 경계선에 선 국가
‘선고 없는 탄핵심판’과 ‘대행의 권한 행사’가 드러낸 헌정 구조의 허점
[KtN 박준식기자] 윤석열 탄핵심판이 헌법재판소에서 계류 중인 가운데, 재판 기일조차 미정인 상황은 한국 정치사에서 이례적이다. 특히 대통령이 직무에 복귀하지 않은 상태에서 권한대행 체제가 대통령 권한까지 행사하며 헌법기관 인사를 지연시키는 현재의 상황은 헌정 체계의 경계선에 가까운 위태로움을 보여준다.
정치권은 이 사태를 ‘헌정 시스템 작동 중단’이라 규정하며, 구조적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이 지점은 단순한 정치적 대립이 아닌, 헌법 시스템 자체의 설계 오류와 무력화를 마주하고 있는 국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침묵하는 헌법재판소, 무력화된 사법기관의 역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국가 최고 권력의 합헌성을 판단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현재 헌재는 선고기일을 잡지 않고 있으며, 그 이유나 일정에 대한 공식 입장도 없다. 이처럼 헌재가 스스로를 침묵의 틀에 가둔 상황은 사법적 독립성을 넘어, 헌법기관으로서의 존재 의미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쟁점이 단순하고, 모든 사안이 위헌‧위법이라는 점이 명백하다”며 선고 지연을 비판했다. 헌재가 정치적 계산과 구조적 무력화 속에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심리 지연’이 아닌 국가 기능의 정지로까지 확산될 수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의 헌정적 모순
현재 행정부는 대통령이 아닌 권한대행 총리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 체제가 ‘대통령 몫’인 헌법재판관 인사권까지 행사하려는 움직임은 헌법적 정당성을 둘러싼 심각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덕수 총리가 국회 추천 재판관 임명을 지연하면서 동시에 향후 대통령 몫 재판관을 임명할 경우, 대통령 권한을 초과한 결정이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다.
김민석 최고위원은 이를 “전두환을 도운 최규하의 길”로 표현하며, 권한대행 체제를 통한 사법적 통제 시도라고 경고했다. 권한대행이 헌정기관 재편을 설계하는 구조는 권력 공백을 임시로 메우는 수준을 넘어, 정치 시스템 전반의 정당성을 흔드는 요인이 된다.
구조적 경계선에 선 헌법기관들
헌법재판소는 판단하지 않고, 행정부는 집행하지 않으며, 권한대행 체제는 헌정기관 인선을 유예하고 있다. 이처럼 헌법기관들이 모두 기능을 멈춘 상태에서, 오직 국회만이 ‘헌정질서 수호’를 언급하고 있는 현 상황은 역설적이다. 국회가 유일하게 정상 기능을 하고 있다는 점이 정치 시스템의 정상성이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비정상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4월 1일까지 마은혁 재판관 임명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국회는 중대한 결단을 할 것”이라 선언했다. 이 발언은 입법부의 강제적 헌정 질서 복원 시도, 즉 권력 간 충돌이 구조적으로 폭발할 수 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진다.
헌법의 공백, 그 안에 놓인 책임의 부재
헌정 체계가 무너질 때 그 첫 번째 신호는 ‘책임지는 기관이 사라지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부재, 권한대행의 무책임, 헌법재판소의 침묵, 그리고 헌법기관 구성의 지연이라는 네 가지 공백을 동시에 경험하고 있다.
이처럼 모든 시스템이 경계선 위에 서 있을 때, 정치권의 과도한 수사와 의혹 제기는 되레 시스템 자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헌법은 결국 사람이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그 시스템의 존속은 규범의 해석이 아니라, 실질적 책임 수행과 제도적 충실성 위에 성립된다. 지금 대한민국이 직면한 과제는 특정 정치인의 복귀 여부가 아니라, 헌법 시스템이 제 기능을 회복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