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헌정질서 복원은 가능한가
결정하지 않는 헌법기관, 이행하지 않는 권력…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KtN 박준식기자] 한국 정치가 직면한 가장 위험한 형태의 위기는 바로 ‘정적(靜的) 쿠데타’다. 탱크가 움직이지 않아도, 총성이 들리지 않아도, 헌법기관이 침묵하고 권력이 결정을 이행하지 않을 때, 체제는 무너지기 시작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헌법재판소는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기일을 지정하지 않고 있다. 대통령 권한대행은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임명을 미루고 있으며, 헌재의 위헌 결정조차 따르지 않는다. 정치는 결정을 했고, 법은 판단을 내렸지만, 행정은 이를 집행하지 않는다. 국민이 체감하는 시스템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지속될 경우, 민주주의는 ‘형식만 남은 절차’로 전락하게 된다. 절차는 작동하되 결과는 없다. 판단은 내려지되 집행은 없다. 헌법기관 간의 견제와 균형은, 균형의 파괴를 넘어 ‘무기력한 방치’로 기능 정지를 맞는다.
정치권이 극단적 수사에 몰입하고 있다는 점 역시 심각한 문제다. ‘계엄 음모론’, ‘윤석열 복귀 작전’이라는 표현은 그 자체로 민주주의 체제를 향한 불신을 상징한다. 그 언어가 허구라면 정쟁의 프레임일 것이고, 사실이라면 체제 전복의 서막일 수 있다. 어느 쪽이든, 국가 시스템은 이를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국가 시스템의 복원은 특정 정당이나 개인의 역할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그것은 입법, 사법, 행정부 모든 기관이 ‘헌법의 기초로 되돌아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단순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된 것을 지체 없이 이행하는 것. 국민에게 준 권력을 위임받은 기관이라면, 헌법이라는 룰을 넘어서는 순간 그 권위는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 한국은 스스로를 통치할 자격이 있는가라는 질문 앞에 서 있다. 정치와 제도, 권력과 책임 사이의 균형이 무너질 때, 남는 것은 감정과 충돌뿐이다. 체제를 지키는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행정 이행에서 시작된다.
선고하지 않는 재판소, 임명하지 않는 총리, 실행하지 않는 정부. 이 세 가지 침묵이 모여, 지금 한국 정치의 공백을 만든다. 그 공백을 채우는 주체는 바로 헌법 그 자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