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트렌드 기획⑤] AI는 창작자인가 도구인가: 예술 주체성의 윤리와 경계
[KtN 박준식기자] 예술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가. 인간의 감정과 상상력으로 빚어낸 결과물만이 예술이라면,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는 어디에 위치해야 하는가. 기술의 비약적 진보는 이제 예술의 창작 권한과 주체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임우경 박사의 연구는 초현실주의 바디아트를 AI와 협업해 구현하는 과정을 통해, ‘창작의 윤리’와 ‘기술의 창의성’이라는 뜨거운 논의를 예술 실천의 현장에서 제기한다.
예술 주체의 구조 변화: 인간 중심성의 해체
예술 창작은 오랫동안 인간의 고유한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감정, 경험, 직관, 무의식과 같은 비가시적 내부 세계가 예술을 가능하게 한다는 믿음은 오랜 철학적 전통이었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러한 내면의 질서를 외부화하고,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으로 예술을 생성한다.
임 박사의 초현실주의 바디아트 연구는 AI가 예술 창작 과정에서 단순한 도구로 머무르지 않고, 조형과 기획의 실질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기존 예술 주체성 개념에 도전장을 던진다. 프롬프트를 입력한 인간은 ‘기획자’이자 ‘언어 설계자’이며, 실제 조형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AI다. 이러한 분업 구조는 예술의 제작 주체가 인간인가, 시스템인가에 대한 해석을 복잡하게 만든다.
기술과 창의성: 모방인가 자율성인가
AI가 학습한 데이터는 기존의 예술 형식, 시각 언어, 조형 기법들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이는 창의성이 아니라 모방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는 비판적 시선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본 연구는 AI의 결과물이 기존 양식을 재현하는 수준을 넘어, 예측할 수 없는 시각 구조와 상징의 변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창의성의 확장 가능성을 논의한다.
특히 초현실주의와 같은 비합리적, 무의식 기반의 예술 장르에서 AI의 우연성과 변형성은 오히려 인간의 직관보다 더 낯선 감각을 유도한다. 이는 기술이 창작의 논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을 넘어, 비의도적 창조성(accidental creativity)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법적·윤리적 경계: 창작권은 누구의 것인가
AI의 창작 참여가 본격화되면서 저작권과 소유권 문제는 불가피한 쟁점이 된다. 예술적 결과물이 AI에 의해 생성되었을 경우, 그 소유는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입력자인 인간, 시스템의 개발자, 혹은 누구도 아닌가?
임 박사의 연구는 이 질문에 명시적 해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디지털 바디아트를 둘러싼 기술의 개입 방식과 창작의 주체성 사이의 긴장을 정면으로 드러낸다. 특히 다음과 같은 경계 문제를 부각시킨다.
프롬프트 설계의 창작성 인정 여부
AI 학습 데이터의 출처와 편향 문제
결과물의 예술적 독립성과 창작자의 통제력
예술의 기술화가 심화될수록, 창작에 대한 법적·철학적 정의 또한 재정립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고 있다.
인간-기계 협업 시대의 예술 윤리
이 연구는 단순히 생성형 AI의 가능성을 확인한 데서 멈추지 않는다. 기술이 창작 과정에 깊이 개입하는 지금, 예술계는 창작의 의미를 다시 정의하고, 예술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묻는 윤리적 질문에 직면해 있다.
직접 손으로 그리지 않아도, 아이디어와 상징을 설계하는 기획자로서 창작에 참여
AI와의 협업 구조를 투명하게 기록하고, 창작 크레딧을 재구성
예술의 범위와 주체성을 확장할 수 있는 제도적 틀 마련 필요
생성형 AI는 예술가의 도구인가, 경쟁자인가, 혹은 협업자인가. 중요한 것은 예술의 본질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 그 본질을 시대에 맞게 갱신하는 작업이다. 이제 예술은 '누가 만들었는가'보다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더 정교하게 설명해야 하는 시대에 진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