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시뮬라크르의 선율, 혹은 감정을 가장한 사운드

생성형 AI 시대의 음악, ‘감정의 기표’는 실제를 대체할 수 있는가

2025-03-30     신미희 기자
생성형 AI는 음악을 기술이 아닌 체험의 시뮬라크르로 전환시킨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신미희기자] 언젠가부터 음악은 감정을 ‘나타내는 것’에서, 감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으로 이동하고 있다.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 이후, 우리는 감정을 품은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흉내 낸 구조물을 소비하고 있다.

이는 장르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감성의 작동 원리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 즉 예술과 감각 사이의 미묘한 균열이 기술에 의해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한다. 그리고 이 변화는,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말한 ‘시뮬라크르(simulacrum)’의 조건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음악의 기표는 더 이상 ‘정서’를 지시하지 않는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를 ‘현실을 모사하지만, 더 이상 실제와의 연관을 가지지 않는 기호 체계’로 정의한다. 음악에서 감정은 오래도록 그 기표의 중심이었다. 고통을 노래하는 선율, 이별을 암시하는 화성, 설렘을 담은 템포는 정서의 구조적 반영이자, 내면의 직접적인 반추였다.

그러나 지금, AI가 생성한 멜로디는 그 정서를 살아본 적이 없다. 경험하지 않은 고통, 느껴보지 않은 설렘이 정확한 수치와 패턴으로 변환되어 대중 앞에 재현된다. 이 감정은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다. 하지만 청자는 감동한다. 그 순간, 우리는 진짜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기표’가 만들어낸 시뮬레이션을 소비하게 된다.

생성형 AI는 음악을 기술이 아닌 체험의 시뮬라크르로 전환시킨다

2025년의 AI 사운드 엔진은 멜로디를 만든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음표의 조합이 아니라, 정서적 경험을 유도하는 설계다. 감정은 더 이상 예측 불가능한 내부의 충동이 아닌, 유저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알고리즘적 시나리오로 구성된다.

이 음악은 실제 감정이 아니라, 감정을 가장한 반응 기계다. AI는 리스너의 재생 패턴, 감성적 취향, SNS 반응 데이터를 종합해 ‘가장 감동할 가능성이 높은 사운드’를 제공한다. 우리는 점차, 감정 그 자체가 아니라, 감정을 시청각적으로 예측한 구조물에 반응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시뮬라크르의 조건이다.

인간의 감성은 ‘복제 불가능한 틈’ 속에 존재하는가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창작자란 누구인가에 대한 본질로 이어진다. 인간은 고통을 견디며 곡을 쓰고, 상실의 기억을 안고 노래한다. 그 정서의 미묘한 결은 완전히 재현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그 고통의 양식조차 복제된다.

감정의 표면만을 정확히 닮은 사운드는, 오히려 청자의 경험 속 감정을 더 효율적으로 환기시킨다. 그것은 경험되지 않은 감정임에도, 충분히 감각되며, 공유되고, 유통된다. 과연 이때, 음악은 인간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인간 감성의 고유성은 더 이상 ‘감동을 일으키는가’에 있지 않다. 그것은 복제될 수 없는 불균형, 예측할 수 없는 흔들림, 반복 불가능한 맥락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예술은 어디까지 대체 가능한가

AI 사운드 크리에이션의 정점은, 청자의 감정까지 설계 가능한 영역이다. 감정이 정량화되고, 청취가 데이터화되는 구조에서, 예술은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적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다. ‘음악이 인간의 무엇을 대체할 수 없을 것인가’에 대한 감각적 기준의 정립이다. 예술이 감각적 시뮬레이션에 머물 때, 그 감정은 결코 ‘살아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음악이 예술로 남기 위해서는, 기술이 닿을 수 없는 불완전성의 여백, 즉 인간 고유의 ‘무너지는 감정의 파장’을 유지해야 한다.

감정을 흉내 낸 기술이 아닌, 감정 그 자체로 남는 예술

AI는 감정을 예측하고 설계하지만, 기억되지 않은 감정은 결코 내면화되지 않는다. 생성형 음악은 감동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감동은 깊은 경험의 침윤이 아닌, 정교하게 만들어진 착각에 가깝다.

우리는 지금,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는 기술과, 감정을 실제로 경험하는 인간 사이에서 예술의 정체성과 역할을 다시 묻고 있는 시대에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음악이 단순히 ‘좋은 소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 인간의 고통과 희망을 품을 수 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음악은 다시 인간에게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감정을 가장한 기술이 아니라, 감정을 피할 수 없는 존재가 만들어낸 진동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