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렌드 기획①] 통치의 진공, 헌정의 공백: 권한대행 체제가 만든 ‘위헌적 일상’의 구조

‘헌법을 가장한 권력 공백’이 만든 위기의 일상화

2025-03-31     박준식 기자
“나라 팔아먹는 매국노”… 조국혁신당, 한덕수에 탄핵 최후통첩 사진=2025 03.29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2024년 12월,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순간 대한민국은 헌정 체계의 응급 모드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비상 체제는 헌법이 전제한 최소한의 기능마저 작동시키지 못한 채, 오히려 정치적 책임 회피의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권한대행 체제는 헌법을 유지하는 장치가 아니라, 헌법적 책무를 회피하고 통치 책임을 분산시키는 정치적 안전지대로 기능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공식적인 무책임 체계’ 속에서 헌정의 본질을 유실하고 있다.

권한대행 체제의 헌법적 한계와 정치적 왜곡

대한민국 헌법 제71조는 대통령이 사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가 직무를 대행하도록 규정한다. 이는 헌정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일시적이고 비상적인 수단이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 이후 시작된 권한대행 체제는 ‘대통령의 공백’을 일시적으로 채우는 기능을 넘어서, 국정 전반의 헌법 이행 책임을 공백 상태로 전가하는 구조로 확장되었다.

국무총리 한덕수는 ‘헌법기관의 지위에 부합하는 대행 권한’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 내란 특검 요청, 긴급 경제 조치 등 핵심적 국정과제를 반복적으로 유예하거나 회피하고 있다. 이는 ‘헌법의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직무 미비가 아니라 헌법적 의무의 방기다.

헌법재판소의 9인 구조 붕괴: 기능이 아니라 ‘기만’의 시스템

헌법재판소는 헌정 체계의 최후 수호 기관이다. 재판관 9인의 구성은 헌법이 보장한 최소한의 합의 절차이며, 헌재 판결의 정당성과 균형을 보장하는 장치다. 그러나 권한대행은 이 헌법적 틀조차 의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

마은혁 후보자의 임명 거부는 단순한 정치적 갈등이 아닌, 국회 추천에 근거한 헌법적 권한 행사에 대한 정면 부정이며, 곧 삼권분립 질서의 파괴 행위다. 더 나아가 두 명의 헌재 재판관이 4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음에도 후임 임명 계획이 가시화되지 않은 지금, 대한민국 헌정 체계는 '심판 없는 민주주의', 즉 법적 최종 판단 기능이 결여된 상태로 전락해가고 있다.

이러한 헌재의 불완전한 구조는 대통령 탄핵 심판의 지연 혹은 무력화를 목적으로 설계된 ‘정치적 공백 장치’로 해석될 수 있다. 정상성을 가장한 위헌의 구조화, 그것이 지금의 헌정 시스템이다.

통치의 사익화: 최상목 논란이 드러낸 권력의 윤리적 파열

경제부총리 최상목의 미국 국채 매입 논란은 단순한 이해충돌을 넘어, 국가 통치 시스템이 사익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구조를 고발한다. 정책 결정권자가 외환시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서, 국채를 보유한 사실 자체는 헌법이 요구하는 공직자의 중립성과 윤리성을 침해한다.

특히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하에서 사실상 경제 정책의 최종 책임자로 자리하고 있다. 그런 위치에서 환율 급등기 외화자산 투자라는 전략을 취했다는 점은, 공적 실패가 사적 이득으로 전환되는 구조의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는 공직자윤리법뿐만 아니라 헌법 제7조의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규정을 정면으로 위배한다.

최 부총리의 사안은 하나의 개인 윤리 문제가 아니라, 헌법 질서 내부에서 사익이 체제적으로 기생할 수 있는 구조가 방치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경고 신호다.

 ‘윤석열 복귀 시나리오’의 실체와 위헌의 전략화

이재명 대표가 제기한 ‘윤석열 복귀 프로젝트’는 이제 단순한 정치적 레토릭을 넘어, 제도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헌재 재판 지연, 공석 방치, 경제통치의 사익화, 통상외교의 마비까지—모든 축에서 나타나는 ‘공백 전략’은 대통령의 복귀를 위한 정치적 설계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제2의 계엄 가능성, 탄핵 심판 무효화, 헌재 판결 불능 상태로 이어지는 일종의 헌정 시나리오 구조화다. 다시 말해, ‘통치의 부재’를 명분으로 ‘비상권력’의 귀환을 정당화하려는, 헌법의 역전 구조가 시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제도적 흐름은 민주주의 위기가 아닌, 헌법 체계에 대한 의도적 침식으로 분석해야 한다.

‘헌법을 가장한 권력 공백’이 만든 위기의 일상화

지금의 상황은 대통령이 없는 위기가 아니다. 헌법이 없는 통치, 그것이 더 본질적인 위기다. 헌법재판소는 무력화되었고, 국회는 임명권을 행사하지 못하며, 행정부는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권력은 존재하지만, 그 어떤 권력도 헌법에 응답하지 않고 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이 구조가 점차 ‘일상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상의 외형을 유지하면서, 실질은 권력 무책임과 헌정 유기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위헌 상태를 ‘정상’처럼 착각하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