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세 윤복희의 고백 “눈이 안 보여요”…조용히 남긴 유언
한쪽 눈 실명, 나머지도 위험…79세 윤복희, 황반변성 투병 고백 서정적 고백과 함께 전한 유언 “죽으면 바다에 뿌려달라”…뮤지컬 1세대의 마지막 기록
[KtN 신미희기자] 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 한국 공연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윤복희(79)가 황반변성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실을 공개했다. 최근 발간된 김정섭 성신여대 문화산업예술대학원 교수의 저서 '케이컬처 시대의 아티스트 케어'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윤복희는 현재의 건강 상태를 조용히 고백했다.
“요즘 유전적 요인으로 한쪽 눈은 완전히 안 보이고, 다른 쪽도 시력이 계속 나빠지고 있어요. 황반변성인데 주사를 여섯 번이나 맞았는데도 효과가 없네요.” 인터뷰에서 윤복희는 담담하게 말했다. 황반변성은 시력의 중심을 담당하는 망막 황반에 이상이 생겨 실명까지 이를 수 있는 퇴행성 질환으로, 특히 고령층에게서 치명적이다.
이어 윤복희는 “저는 죽어서 어디에 묻히고 싶지 않아요. 후배들에게도 유언처럼 말했죠.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그 가루를 조금씩 나눠 바다에 뿌려달라고요”라고 전했다.
1946년생인 윤복희는 다섯 살이던 1951년, 희극인이었던 아버지 윤부길을 따라 서울 중앙극장 무대에 올라 처음 무대에 섰다. 1963년에는 워커힐 극장 개관무대에서 재즈 거장 루이 암스트롱 앞에서 모창 실력을 보여줬고, 암스트롱의 권유로 미국과 영국에서 활동하며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해외 진출을 이뤄냈다.
귀국 후 발표한 미니스커트 차림의 앨범 재킷은 당시 사회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윤복희를 위한 미니스커트 패션쇼가 별도로 열릴 만큼, 그의 등장은 시대를 흔드는 문화적 사건이었다. 대표곡 ‘웃는 얼굴 다정해도’(1967)로 정식 데뷔한 후 ‘여러분’(1979), ‘노래하는 곳에’, ‘친구야’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기며 대중가요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컬 배우로서의 경력도 독보적이다. 1976년 현대극장에서 국내 최초 뮤지컬 ‘빠담빠담’의 에디트 피아프 역을 맡아 한국 뮤지컬의 시작을 열었고, 이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마리아 마리아’, ‘피터팬’, ‘사운드 오브 뮤직’, ‘캣츠’ 등 수많은 작품에 출연하며 무대 예술의 중심에 서왔다.
문화계에서는 윤복희의 이번 고백이 단지 한 예술인의 투병을 넘어서, 한국 공연예술계의 역사와 돌봄, 그리고 남겨야 할 유산에 대한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고 평가하고 있다. 김정섭 교수는 “윤복희의 생애와 고백은 K컬처가 어떻게 확장되고 형성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축적된 기록”이라고 전했다.
윤복희는 여전히 자신을 무대 위 사람이라 말하며, 오늘도 한 곡의 노래와 한 줄의 대사로 기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