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기획①] ‘형태의 해체, 소재의 미래’ 2025 국제 울마크상 수상작이 던진 질문

듀란 란팅크와 피터 뮐리어, 메리노 울을 통해 패션의 미학과 기술을 재정의하다

2025-04-03     임우경 기자
2025년 국제 울마크상(International Woolmark Prize) 사진=The Woolmark Compan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2025년 국제 울마크상(International Woolmark Prize)은 더 이상 단순한 신진 디자이너 발굴 무대가 아니다. 올해 밀라노에서 열린 시상식은 ‘소재의 개념 전환’과 ‘형태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공존한 결정적 순간이었다. 수상자 듀란 란팅크(Duran Lantink)와 피터 뮐리어(Pieter Mulier)는 메리노 울이라는 전통 섬유를 통해 기술과 조형, 지속가능성과 조화미학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하며, 동시대 패션 담론의 중심을 '디자인'에서 '재료와 구조의 미학'으로 이동시켰다.

듀란 란팅크의 ‘듀라니멀’ 조형의 언어로 말하는 니트웨어

이번 국제 울마크상 본상을 수상한 듀란 란팅크는, 기존 니트웨어의 관습을 완전히 해체한 ‘듀라니멀(Duranimal)’ 컬렉션으로 심사위원단의 주목을 받았다. 메리노 울로 제작된 외골격 구조의 드레스는 단순한 옷을 넘어 하나의 공간적 조형물처럼 작동한다. 이는 네덜란드 장인들과 협업해 탄생한 작품으로, ‘옷의 기능’이라는 본질적 정의를 전복시키며 새로운 형태적 감각을 제안한다.

란팅크는 “나는 항상 형태와 구조,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에 집착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그에게 메리노 울은 단순한 친환경 섬유가 아니라, ‘미래적 상상력’을 현실로 연결하는 매개였다. 6만 호주달러 규모의 울마크 제작 지원금을 통해 탄생한 이 컬렉션은, 패션이 조형 예술과 만나는 접점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One Yarn’ 프로젝트 알라이아의 울 실험, 미니멀리즘을 넘어 구조미로

또 다른 주목할 수상은 '칼 라거펠트 혁신상'을 수상한 알라이아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피터 뮐리어다. 피터의 2024년 가을 컬렉션 ‘One Yarn’은 단 하나의 메리노 울 실로 모든 의상을 완성하는 급진적 개념에서 출발했다. 이는 소재 활용의 효율성에 대한 기술적 고민이자, 울이라는 전통 섬유가 지닌 물성의 다양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인 조형적 실험이었다.

뮐리어는 “울은 알라이아에서 모던함과 혁신을 탐구하는 핵심 소재”라고 강조하며, 울을 통해 단순한 직조를 넘어서 형태, 질감, 볼륨의 연출이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이번 수상은 알라이아가 전통적인 패션 하우스의 틀을 넘어, 기술과 개념의 실험실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었다.

공급망에서 기술로  Südwolle 그룹의 수상과 섬유 산업의 재편

패션 산업의 이면에서, 원사 공급망을 혁신해온 독일의 Südwolle 그룹은 ‘2025 서플라이 체인 어워드’를 수상하며 기술 중심 섬유 산업의 존재감을 부각시켰다. 단순히 원사를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추적 가능성, 지속가능성, 기능성 강화 등 전방위적 섬유 기술 개발을 통해 울마크 생태계 전반의 질적 전환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이는 오늘날 패션이 단순한 미감의 경쟁을 넘어, 산업 기술과 지속가능성 설계의 전장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심사 기준의 진화  '형태'를 보는 시선의 확장

이번 울마크상은 단순히 '예쁜 옷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도나텔라 베르사체, 이브 카마라, 알레산드로 사르토리, 시네이드 버크, 허니 디종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각 디자이너가 ‘메리노 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얼마나 급진적인 형태의 언어를 구축했는지, 그리고 그 언어가 동시대 산업·문화적 맥락에서 어떤 가치로 기능하는지를 중점적으로 보았다.

특히 게스트 아트 디렉터로 참여한 이브 카마라는 “디자이너가 단순히 옷을 만드는 사람을 넘어, 미래 산업을 설계하는 창조자”임을 강조했다. 이는 울마크상이 본질적으로 ‘섬유를 매개로 한 창작의 철학’을 평가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성 너머, 섬유 중심의 창작 철학으로의 회귀

이번 수상자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왜 옷을 만드는가?” 란팅크는 그 답을 ‘형태의 재구성’으로, 뮐리어는 ‘소재의 응축된 철학’으로 풀어냈다. 이는 단순한 지속가능성이나 스타일의 영역을 넘어, 패션이 본질적으로 철학적 행위이자 물성과 시간, 공간의 관계를 묻는 예술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오늘날의 패션은 유행을 좇는 소비 문법에서 벗어나, 재료와 형태, 제작 방식 자체가 담론으로 기능하는 시대에 진입했다. 특히 메리노 울은 단순한 친환경 섬유를 넘어, ‘개념을 실험할 수 있는 재료’로 재정의되며 새로운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다. 이는 섬유의 미래가 더 이상 기능적 문제에 머물지 않고, 미학적·기술적 상상력의 출발점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