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기획③] 기술과 윤리, 그리고 조형성...울마크가 재정의한 지속가능성의 미학

메리노 울을 중심으로 재편되는 미래 패션의 구조적 전환

2025-04-03     임우경 기자
사진=thewoolmarkcompan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지속가능성’이라는 단어가 패션 산업의 수사적 장식에서 벗어나, 조형 언어의 핵심 개념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5 국제 울마크상은 그 전환의 구체적 장면을 보여준다. 메리노 울이라는 전통 섬유를 통해 디자이너들은 단지 윤리적 소재를 사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옷의 구조, 형태, 기술, 그리고 소비 방식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이제 재료의 출처가 아니라, 창작의 방식과 사고 구조 그 자체로 작동한다.

메리노 울, ‘기능’에서 ‘개념’으로

과거 메리노 울은 고급 섬유 또는 천연소재라는 범주 내에서만 해석되었다. 그러나 울마크상이 집중해온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는 울을 더 이상 단순한 재료가 아닌, 개념적 조형의 플랫폼으로 전환시켰다. 울의 탄성, 통기성, 생분해성이라는 기능적 특성은 이번 파이널리스트들의 작업에서 ‘변형 가능한 구조’, ‘신체에 반응하는 형태’, ‘시간성을 품은 소재’라는 조형 개념으로 변주되었다.

특히 피터 뮐리어의 ‘One Yarn’ 프로젝트는 하나의 실로 컬렉션 전체를 완성함으로써, 울이 가진 구조적 응집력과 철학적 완결성을 동시에 구현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지속가능성이 단순한 절약이 아니라, 형태의 통합적 사유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성의 구조화 ... 설계로서의 윤리

울마크 수상작들은 한 가지 공통된 조형적 특성을 공유한다. 바로 디자인의 단계에서부터 지속가능성을 구조화했다는 점이다. 이는 포스트-윤리적 소비사회에서 패션이 어떤 방식으로 생산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듀란 란팅크의 경우, 의복을 ‘조립 가능한 구조물’로 해석하면서 생산과 해체의 순환 구조를 고려한 설계를 시도했다. 이는 단순한 재활용 개념을 넘어, 디자인 그 자체가 해체 가능한 철학적 구조를 지향해야 한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또한 Ester Manas는 다양한 신체 형태에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니트 구조를 통해, 착용자가 옷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옷이 사용자에 맞춰 변화하는 디자인 윤리를 구현했다. 이는 지속가능성이 단순한 환경 개념을 넘어, 사용자 중심의 구조적 미학으로 확장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패션 생태계의 비물질적 전환... ‘양산’에서 ‘가치 설계’로

울마크상은 수상자뿐 아니라, 파이널리스트 전원에게 이노베이션 아카데미를 통한 멘토링과 글로벌 유통망과의 연계를 제공한다. 이는 지속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정책적, 유통적, 산업적으로 구조화하겠다는 장기 전략의 일환이다. 과거 디자이너 개인의 윤리적 선택에 맡겼던 지속가능성은 이제 산업 구조 차원에서 제도화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제도화가 ‘규제’가 아니라 ‘상상력의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울마크가 구축한 지속가능성 생태계는 생산의 감축이 아니라, 창작의 진화를 위한 기반으로 작동한다. 이는 ‘덜 만들기’가 아닌 ‘더 나은 방식으로 만들기’라는 창작 철학의 전환이며, 패션의 비물질화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윤리적 섬유의 정치성.. 울의 재배치

메리노 울은 그 자체로도 윤리적 논쟁의 중심에 있던 소재였다. 동물복지, 목축 방식, 탄소 배출 등 수많은 환경·윤리적 변수들이 얽힌 소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마크는 이 소재의 정치적 리스크를 기술적 투명성과 생산지 기반 네트워크로 전환해냈다.

2025년 수상 기업으로 선정된 Südwolle 그룹은 소재 공급의 추적 가능성, 지속가능한 염색 공정, 저에너지 생산 설비 등을 통해 울 섬유의 윤리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시스템적 접근을 제시했다. 이는 디자인 단계를 넘어, 소재 유통과 산업 표준화 단계에서까지 지속가능성 담론이 확장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윤리’와 ‘조형’의 결합이 만드는 미래

울마크상이 보여준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트렌드나 젊은 디자이너의 발견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패션이 ‘미적 감각’과 ‘윤리적 기준’이라는 두 상반된 좌표를 어떻게 통합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었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니다. 그것은 창작의 조건이며, 미래 디자인의 구조적 필수 요소다. 메리노 울은 이 조건 위에서 예술과 기술, 지역성과 글로벌성, 개인성과 산업성이라는 다양한 층위를 연결하는 중심축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울마크가 구축한 이 플랫폼은 패션의 창작 구조를 변화시키고 있으며, 그 변화는 단기적 유행이 아닌 산업 패러다임의 본질적 전환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더 이상 ‘어떻게 만들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의 문제로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