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트렌드 기획⑤] ‘로컬에서 시작된 구조 혁신’ 메리노 울이 이끄는 창작 생태계의 재편

장인의 손과 디자이너의 개념이 만나는 지점, 지역성 기반 창작의 새로운 작동 방식

2025-04-03     임우경 기자
사진=thewoolmarkcompany,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2025 국제 울마크상이 보여준 가장 본질적인 변화는, 패션 생태계가 다시 ‘로컬’로 회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로컬은 주변부이자 중심의 대체재였지만, 오늘날의 로컬은 글로벌 서사의 출발점이자 창작 시스템의 핵심축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메리노 울을 중심으로 작동하는 이 변화는 디자이너의 개념 실험과 장인의 손작업이 상호 의존하는 방식으로 구현되며, 패션 산업 전반의 구조적 재편을 시사한다.

디자이너-장인 협업의 재정의 ... 형태의 구현을 위한 공동 구조

2025 울마크상 수상작 중 하나인 듀란 란팅크의 ‘Duranimal’ 컬렉션은 네덜란드 장인들과 협업해 탄생했다. 외골격 형태의 드레스는 단순한 창작물이 아니라, 장인의 물리적 기술과 디자이너의 개념적 조형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이는 단순한 하청 생산 구조가 아닌, 창작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장인의 기술이 설계에 통합되는 수평적 협업 구조를 상징한다.

이러한 협업 모델은 과거의 ‘디자이너는 구상하고, 장인은 제작한다’는 분업적 체계를 벗어나, ‘형태를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십’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장인의 손은 더 이상 ‘기술자의 손’이 아니라, 조형 언어를 전달하는 ‘번역자의 손’으로 작동한다.

로컬리티의 작동 방식... ‘지역적 감각’에서 ‘구조적 개입’으로

로컬의 개념은 이제 미적 요소의 차용을 넘어서, 생산과 유통, 윤리와 설계 전반에 관여하는 시스템적 개입의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자메이카 출신 디자이너 레이첼 스콧의 브랜드 Diotima는 카리브 전통 크로셰 기술을 지역 여성 노동자와 협업하여 메리노 울로 재현했다. 이는 단순히 장식적 전통을 재활용한 것이 아니라, 지역 기반의 제작 기술을 현대적 디자인 시스템에 통합한 사례다.

이처럼 로컬은 더 이상 문화적 상징으로 소비되지 않는다. 그것은 창작 과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갖는 구조적 참여자로 진화하고 있다.

생산 시스템의 수직화에서 수평화로... 디자인의 장소성이 가진 의미

기존 패션 산업은 디자인-생산-유통의 선형적 구조를 따랐다. 하지만 울마크상에서 주목받은 디자이너들은 이 선형 구조를 ‘원형적 구조’로 전환하고 있다. 생산의 장소가 곧 디자인의 장소가 되는 방식, 즉 소재의 기원과 제작 현장이 디자인 사고에 실질적으로 개입하는 구조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공급망의 재조정이 아니라, 창작 윤리의 재구성이다. 지역 장인과의 협업은 비용 절감을 위한 외주가 아닌, 형태에 대한 고유한 해석의 확장을 가능케 하며, 이는 창작의 깊이를 다층화하는 기반이 된다.

울을 매개로 한 ‘로컬 네트워크의 글로컬화’

울마크는 단순히 메리노 울을 공급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그것은 소재를 중심으로 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로컬화 전략을 실행하는 플랫폼이다. 이번 울마크상 파이널리스트들은 자국 혹은 인접 지역의 장인들과 협업하면서, 각자의 문화적 기반과 기술적 자산을 ‘글로벌 유통망’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구조는 ‘로컬의 세계화’가 아닌, 세계화된 플랫폼 속에서 로컬의 자율성을 보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글로벌 브랜드들이 점점 표준화되어가는 시대에 ‘차별화된 제작 감각’으로 기능한다. 즉, 울은 ‘전 세계에서 생산 가능한 동일한 섬유’이면서도, ‘지역마다 다른 감각을 가진 섬유’가 되는 이중성을 갖는다.

섬유 중심 창작의 미래는 지역에 있다

메리노 울을 중심으로 한 이번 울마크상의 변화는 단순한 섬유 활용의 실험이 아니라, 창작 시스템 전체의 구조적 전환을 드러낸다. 디자이너는 더 이상 단독 저작자가 아니다. 장인, 지역, 기술, 유통이 모두 공동 창작자로 참여하는 이 새로운 구조에서, 디자인은 네트워크 설계이자 장소적 감각의 조형화로 나아가고 있다.

로컬은 더 이상 패션계의 대체적 정서가 아니다. 그것은 창작의 기원이자, 조형 실험의 실험실이며, 지속가능한 감각을 실천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메리노 울은 그 로컬 구조를 매개하고 조정하는 고유한 섬유로, 글로벌 패션의 윤리적 감수성과 조형적 실험을 동시에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