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A] 사랑의 조건을 직조하다
송미리내 작가, '먼저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 비로소 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2025)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92x117cm
[KtN 임민정기자]실은 말이 없지만 모든 것을 기억한다. 천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감정의 피부를 지닌다.송미리내 작가의 신작 《먼저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 비로소 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이러한 무언의 감각을 화폭 위에서 언어로, 구조로, 감정의 시각적 밀도로 풀어낸 회복의 회화다.
이 작품은 단지 '긍정'을 말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향한 믿음이 타자를 향한 사랑의 선결 조건이라는 명제는, 작가가 수년간 감정의 해체와 복원을 반복하며 찾아낸 내면적 진실의 조형적 정리이자 철학적 응답이다. 회복은 선언이 아니라 구조다. 송미리내는 이 구조를 실과 색, 천과 텍스트라는 사유의 재료로 직조한다.
기억을 짜고, 감정을 봉합하다
이 작품의 시작은 작가가 수년간 이어온 인터뷰 프로젝트 ‘RECOVERY’에서 비롯되었다. 팬데믹 이후 단절된 사회적 관계와 불안정한 감정 구조 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를 수집했고,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문장 하나가 있었다. "나 자신을 믿지 못하니까 누군가를 사랑할 수가 없어요."
작가는 이 문장을 자신의 언어로 변환하고, 회화적 매체를 통해 시각화했다. 작품 제목은 이 문장에서 도출되었으며, 단순한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기회복을 통한 타자 관계의 윤리적 출발을 암시한다.
붉은 감정과 내면의 레이어
작품의 중앙을 강하게 장악하고 있는 것은 깊고 밀도 높은 붉은색의 중심 질량이다. 이 붉음은 분노나 상처의 외피가 아니라, 자기존재에 대한 뜨거운 감각에 가깝다. 붉은색을 관통하며 교차하는 얇고 긴 실선들은 반복되는 생각, 갈등, 관계의 흔적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하나의 방향성을 갖는 흐름을 이룬다.
좌우로 펼쳐진 다양한 색상의 천 조각들은 마치 정서의 편린처럼 배치되어 있으며, 그 위를 겹치는 텍스트 드로잉은 감정이 형상으로 정리되기 전, 무의식의 언어처럼 미세하게 남겨진다. 화면 곳곳에 등장하는 드라이한 붓터치와 금색의 질감은 ‘내면을 꿰매는 손’의 물리적 흔적처럼, 일종의 작업성과 고통의 표식으로 기능한다.
예술적 방법론: 비물질의 감각화를 향한 조형 실험
송미리내는 전통적인 회화의 경계를 벗어나, 실과 천을 활용해 감정과 기억이라는 비물질을 조형화해온 작가다. 회화에서 흔히 사용되지 않는 재료인 ‘실’은 그녀에게 정서적 매개체이자, 감정의 시간성을 직조하는 선형적 장치다.
실은 직관적으로 ‘꿰맨다’는 행위를 떠올리게 하며, 봉합과 연결, 지속과 재구성의 상징으로 기능한다. 천은 감정의 피부이며, 물성의 시간성과 마모의 흔적을 간직한 재료로써 기억의 물리적 은유다. 이러한 방식은 동시대 K-ART에서 부상하고 있는 감정 중심 회화, 텍스타일 회화, 여성적 조형 언어와 긴밀하게 호응한다.
작업 맥락
이 작품은 송미리내가 수년간 탐구해온 ‘감정의 회복’이라는 테마를 집약한 중요한 이정표다. 이전 작업들이 감정의 단면을 꿰매고, 경험의 조각을 수집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회화는 감정의 구조 자체를 회화적으로 조직하는 시도다.
특히 ‘사랑’이라는 주제는 송미리내의 작업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전면화된 테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관계의 감상이나 낭만이 아니라, 자기 수복 이후의 책임과 타자성을 포함하는 철학적 사랑에 가깝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사랑이 회화적으로 어떻게 작동할 수 있는지를 조형 언어로 설명하는 작품이다.
갤러리 A
이번 작품은 갤러리 A 전시 테마인 ‘감정의 공공성과 정서의 공유’라는 큰 구조 안에서, 개인의 감정 회복이 어떻게 사회적 연대의 가능성으로 전환될 수 있는가에 대한 핵심적 해석을 제공한다.
이 작품이 전시 안에서 수행하는 역할은 감정의 선언이 아니라, 감정 구조의 복원이다. 자기 믿음과 자기애를 기반으로 타인과의 연결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는 팬데믹 이후 무너진 관계 구조를 회화적 방식으로 회복하려는 전시의 흐름 속에서 중심축에 가까운 서사적 장치로 작동한다.
감정적 여백과 관객의 해석 가능성
관객은 이 작품 앞에서 질문을 받는다. ‘나는 지금 나를 충분히 사랑하고 있는가.’ 이는 단지 심리적 질문이 아니라, 사회적 질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서로를 돌보고자 할 때, 그 출발선이 어디에서부터 다시 설정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회화적 성찰이 이 작품에 스며 있다.
따라서 이 작품은 감정의 구조를 선명히 시각화하면서도, 관람자 각자의 삶과 기억에 따라 다층적 감정의 해석이 가능한 열린 조형 언어로 기능한다. 회복의 정의는 하나가 아니다. 송미리내는 그 수많은 정의를 실로 엮고 천으로 감싸며, 감정을 하나의 시각적 공동체로 제안한다.
제목: 《먼저 나 자신을 믿고 사랑해야 비로소 너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
작가: 송미리내
재료: Acrylic & Mixed Media on Canvas
크기: 92 x 117 cm
제작 연도: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