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트렌드 기획⑤-2] 국가별 소재 전략 비교: 미국 vs 일본 vs 한국

정책과 기술, 구조의 차이… ‘공급망 주권’을 설계하는 세 가지 방식

2025-04-05     박준식 기자
정책과 기술, 구조의 차이… ‘공급망 주권’을 설계하는 세 가지 방식.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반도체 공급망이 지정학의 전면으로 부상한 지금, 소재 전략은 각국 산업정책의 민낯을 드러내는 척도가 되고 있다. 미국은 거대한 자본투자로 내재화를 꾀하고 있고, 일본은 정밀화학 기반의 장기지속 모델을 고수한다. 한국은 기술력과 생산능력을 갖췄지만, 투자 구조와 공공전략에서는 유동적 위치에 서 있다. 

미국: 보조금과 법제, 파편적 생태계를 끌어모으는 전략

미국은 CHIPS and Science Act(2022)와 IRA(Inflation Reduction Act)를 통해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규모 재정지원을 집중하고 있다. 소재 부문에 한정하더라도, 약 90억 달러의 신규 설비투자와 10억 달러 규모의 운영비 보조가 필요하다는 맥킨지의 분석은, 미국 정부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공급망 내 병목을 인식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징적인 전략 요소

▶정치적 동원력: 연방정부–지방정부–산업계 간 전략적 연계를 통해 '소재 투자 대상지' 자체를 정치화하며, 지역 경제와 고용 창출 논리를 함께 끌어들이고 있다.

▶기술 소유권 보호: 소재 기술에 대한 IP 확보를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달성하려 하며, 공급 다변화보다는 자국 내 통제를 지향한다.

▶공급망 국산화의 시간표화: 보고서에서는 2030년까지의 공급망 구조를 시계열로 상정하고 있으며, 이는 단기 성과가 아닌 장기적 계획성과 정책 일관성을 반영한다.

 

미국은 완성된 소재 생태계를 보유한 국가는 아니지만, 그 공백을 보완하기 위한 ‘자본+법률+외교’ 조합형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이는 기술 선도국이 아니라, 생태계 설계국으로서의 접근이다.

일본: 장수기업과 IP 중심 생태계의 조용한 강자

일본은 화학소재, 특히 포토레지스트, 슬러리, 고순도 불산, 특수 가스 등에서 20년 이상 누적된 기술자산과 시장 지배력을 보유하고 있다.

소재 분야의 특징

▶초장기 투자모델: 도쿄오카공업(TOK), JSR, 신에츠화학 등 주요 기업들은 단기 실적보다 장기 제품 안정성과 고객 맞춤형 조정 능력을 핵심 경쟁력으로 삼는다.

▶IP 중심 구조: 정제·가공 기술에 대한 세분화된 특허망을 구축하며, 기술 거래 자체를 생태계 비즈니스로 전환시켰다.

▶정부의 전략적 보호: 2019년 한일 무역갈등 당시, 일본 정부는 특정 소재의 수출을 전략물자 수준으로 격상시키며 ‘소재=외교 자산’이라는 프레임을 명확히 드러냈다.

 

일본은 자국 생산력 자체보다, 핵심소재의 글로벌 장악력과 기술 이전의 제한성을 통해 반도체 생태계에서 구조적 지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미국의 ‘투자 기반 재편’과는 상반된 전략이다.

한국: 기술력과 생산능력 사이의 전략 공백

한국은 고순도 불산, CMP 슬러리, 레지스트, 프리커서 등에서 글로벌 톱 티어의 기술과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급망 재편 논의에서는 항상 ‘중간 노드’로 호출된다. 

▶민간 중심 구조의 한계: 대부분의 소재기업은 삼성·SK 등의 대형 수요처를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어, 글로벌 공급망 전략의 일원으로서 기능하기 어렵다.

▶공공정책의 단기성: 수출규제 대응, 특정 기술 개발 등에 일시적 지원은 있지만, 일본이나 미국처럼 중장기 기술로드맵과 연계된 정책 시스템은 취약하다.

▶기술 IP의 제약: 제조 기술은 있으나, 정밀 제어기술이나 핵심 장비, 원천 특허 등은 여전히 일본·미국 의존도가 높다. 이는 자체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있어 기술 자립의 비대칭성을 초래한다.

한국은 ‘기술력은 있으나 구조는 미완’인 상태로, 글로벌 소재 경쟁에서 가장 예민한 위치에 서 있다.

정책 패러다임의 차이: 생산지 유치 vs. 생태계 설계

세 국가의 전략은 단순 비교 불가능한 복합구조다. 미국은 ‘정치-자본-법제’ 연동 구조, 일본은 ‘기술-IP-장수기업’ 기반의 내구성 전략, 한국은 ‘생산력 중심’의 실행역량으로 정리된다.

핵심은 각국이 어디에 산업 주권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가다.

▶미국은 시간표 중심의 자립화 설계

▶일본은 글로벌 공급 통제력

▶한국은 고도화된 실행력을 기반

 

하지만 이 중 가장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건 한국이다. 전략적 연계가 부족한 채, 고립된 경쟁력을 유지하는 방식은 점차 한계를 드러낼 수 있다.

한국경제에 비치는 시사점: 연계 없는 기술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한국은 기술과 생산역량이라는 큰 자산을 갖고 있지만, 이를 산업 주권으로 전환하기 위한 정책적 연계는 미흡하다. 

▶국가 차원의 소재 통합 로드맵 구축: 정제–공정–출하까지 이어지는 기술 연계형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

▶민간 중심 구조에 대한 전략적 보완: 소재기업과 장비기업 간 수직계열화를 정책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국제 파트너십의 주도권 확보: 미국 중심의 공급망에 단순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소재 전략의 협상력 있는 파트너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소재 전략은 기술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일이다

소재는 더 이상 부품의 보조요소가 아니다. 그것은 국가 전략과 산업 주권, 기술의 독립성과 연결된 고차원적 자산이다. 미국과 일본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이 인식을 제도화했고, 그 전략은 공급망 재편의 핵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을 전략으로, 실행을 구조로 전환하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