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산업 트렌드] 보호무역과 패션 산업, 글로벌 협업의 길목에서 마주한 역설

‘해방일 관세’가 던진 파장, 미국 패션 산업의 균열과 세계화 이후의 시험대

2025-04-06     임우경 기자
 ‘해방일 관세’가 던진 파장, 미국 패션 산업의 균열과 세계화 이후의 시험대.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5일,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해방일 관세(Liberation Day Tariffs)’ 조치는 단순한 무역 규제 차원을 넘어 미국 패션 산업 전반의 구조를 재편할 중대한 전환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면적인 10% 수입관세와 함께, 중국(54%), 베트남(46%), 방글라데시(37%) 등 주요 수입국에 부과된 고율의 추가 관세는 창의성과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해온 미국 패션 산업에 일종의 구조적 충격을 가한 셈이다.

이러한 보호무역 조치가 국내 제조업 부활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오히려 미국 패션 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중소 브랜드, 소비자, 농업, 지속가능성 생태계 전반에 걸친 복합적인 균열이 확대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기반 산업의 취약성 노출

현재 미국 패션 산업은 의류의 98%, 신발의 99%를 해외에서 수입하고 있으며, 이 중 다수가 아시아 저비용 생산국에 집중되어 있다. 이번 관세 조치는 이러한 글로벌 분업 체계의 핵심축을 정면으로 겨냥한 셈이다. 특히 주요 소싱국에 부과된 고율 관세는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공급망의 연쇄적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대형 브랜드뿐 아니라 중소 규모의 패션 기업들까지 수입 단가 상승과 납기 지연, 품질 불균형 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며,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나이키, 룰루레몬, 랄프 로렌 등 주요 브랜드의 주가가 발표 당일 최대 10% 하락한 것은 이러한 구조적 불확실성을 반영하는 시장의 반응으로 해석된다.

창의성보다 생존 전략이 우선되는 현실

패션 생태계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견인해온 독립 브랜드들이 생존 위기에 몰리고 있다. 기술 기반 의류를 제작하는 Wild Rye는 중국산 원부자재에 최대 89.5%의 관세가 부과되면서, 가격 인상과 마진 축소 사이에서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다. 소량 다품종의 특수 원단에 의존해온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대체 공급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는 특정 제품군의 단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일부 브랜드는 국내 생산시설을 폐쇄하며 비용 구조 재편에 들어갔고, 결과적으로 디자인 실험과 연구개발 여력은 점차 축소되고 있다. 창의성이 산업 경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할 패션 산업에서, 정책 리스크가 브랜드의 혁신 역량을 억제하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파리 패션 위크에서 로에베의 2024 가을/겨울 남성복 컬렉션의 런웨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유투브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내 제조의 한계, 보호주의가 품지 못한 현실

정책의 명분은 국내 제조업 활성화에 있지만, 현실은 냉정하다. 미국 내 의류 생산 인프라는 1990년대 이후 급격히 쇠퇴했으며, 고임금 구조와 전문 인력 부족, 원단 가공 기반의 부재 등으로 인해 즉각적인 ‘리쇼어링’은 현실적 대안이 되지 못한다. 설령 일부 생산이 미국으로 이전되더라도, 그에 따른 비용 상승은 브랜드의 가격 경쟁력을 현저히 약화시킨다.

많은 기업들은 멕시코와 같은 USMCA 협정 국가나 인도, 아프리카 등의 대체 생산기지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으나, 공급망의 재편은 단기간에 완성되기 어렵다.

소비자 행태의 구조적 변화

가격 상승은 소비자 행태의 변화를 촉진시키고 있다. 최근 설문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의 62%가 관세로 인한 의류 가격 상승을 우려하고 있으며, 58%는 더 이상 저가 패스트패션보다는 내구성이 높은 제품에 투자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소유’에서 ‘지속 가능성’으로 전환되는 소비 트렌드가 점차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고 거래 플랫폼인 ThredUp 등 리셀 시장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주목받고 있다. 다만 이 전환이 중산층 이상의 소비자에게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지만, 저소득 가계에는 또 다른 소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소비 양극화의 심화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패션의 미래를 다시 쓰는 꼼데가르송. 사진=Isidore Montag/Gorunway.com,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농업과 패션의 연결 고리: 면화 산업의 연쇄 충격

패션 산업의 혼란은 농업에도 파장을 미치고 있다. 특히 미국 면화 산업은 중국의 보복 관세 가능성과 글로벌 수요 위축으로 인한 수출 감소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2018년 무역 전쟁 당시 중국의 미국산 면화 수입량은 350만 베일에서 70만 베일로 급감했으며, 이번 관세 정책 이후에도 유사한 하락세가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면화 가격은 다시 하락세로 전환되고 있으며, 브라질, 캐나다 등에서의 보복 관세도 미국 농산물 수출에 부담을 더하고 있다.

글로벌 반응과 산업 간 긴장 구도

국제사회의 반응은 명확하다. 중국은 이번 관세를 ‘일방적 괴롭힘’으로 규정하며 보복을 경고했고, 베트남은 WTO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 반면 멕시코, 인도, 방글라데시 등은 미국 브랜드들의 대체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생산 유치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결국 이번 관세 정책은 미국 내 제조 회복보다는 글로벌 생산지도의 재편을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보호무역은 창의 산업의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해방일 관세’는 세계화 이후 정착된 창의 산업의 공급망 구조를 근본적으로 시험대에 올렸다. 패션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문화, 트렌드, 기술, 지속가능성이 교차하는 복합 산업이며, 글로벌 협업을 전제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이번 정책은 생산지 국적이라는 단편적 기준으로 산업 전반에 충격을 가하고 있다.

창의 산업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정교해야 한다. 글로벌 연결성과 지속가능한 생태계를 고려한 산업 전략, 그리고 기술 혁신과 공급망 다양화를 포함한 실용적 접근이 병행되어야 한다. 단기적인 관세 정책은 자칫 산업의 뿌리를 흔들 수 있으며, 미국 패션 브랜드의 세계 시장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이분법적인 보호무역이 아닌, 글로벌 협업을 전제로 한 자립적 구조의 재정립이다. 이를 통해서만이 미국 패션 산업은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창의성과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