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트렌드①] 미국式 통상 리셋과 관세정치의 귀환

무역 패러다임의 전환, ‘비용의 시대’에 들어선 세계경제의 불편한 진실

2025-04-07     박준식 기자
무역 패러다임의 전환, ‘비용의 시대’에 들어선 세계경제의 불편한 진실.  사진=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로즈 가든에서 새로운 상호관세 부과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보호무역 조치가 아니라, 국제 통상질서 전반을 재편하려는 미국식 전략 리셋의 신호탄이었다. 

경제적 이익보다 ‘무역 정치의 리엔지니어링’

이번 미국의 상호관세 행정명령은 경제적 수지 개선 이상의 전략적 목적을 내포하고 있다. 미 행정부는 실효관세율이 낮은 국가들에 대해 ‘비관세 장벽’과 무역흑자 등을 가산한 ‘추정 관세율’을 계산하고, 이를 기준으로 새로운 관세를 부과했다. 단순한 상호성(reciprocity) 개념을 넘어, 국가 간 무역을 '수지 기반의 정치 게임'으로 전환하려는 셈법이다.

EU, 일본, 한국 등 주요 동맹국들에 대해서도 유사한 방식의 역산 관세율이 적용됐으며, 한국은 0.79% 실효관세에도 불구하고 25%라는 고율이 책정됐다. 이는 미국이 경제적 수지를 통해 각국의 '불공정성'을 재단하고, 무역관계를 정치적 영향력 확대의 수단으로 전환하려는 '관세 정치의 귀환'을 의미한다.

반도체는 남기고, 자동차는 겨냥했다는 사실의 의미

흥미로운 점은 적용 예외 품목의 구성이다. 반도체, 철강, 의약품, 구리, 에너지 제품 등은 면제되거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는 미국의 산업 안보 전략이 반도체·의약품·핵심 소재 등을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동시에, 이들 분야에서 미국은 ‘동맹국 의존도 유지’를 필요로 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반면, 자동차는 고율 관세 대상이 되었고, 북미 이외 생산 차종은 일괄적으로 25%의 고율이 적용된다. 이는 단순한 무역 흑자 조정이 아니라, 자동차 산업 공급망의 ‘미국 내 이전’이라는 강제 유인으로 해석된다. 특히 멕시코·캐나다의 USMCA 준수 여부에 따라 차등을 두는 방식은 동맹국에도 조건부 협상 구조를 부과하는 전략적 설계로 볼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 리쇼어링이 아닌 ‘리디자인’

이러한 움직임은 단순한 리쇼어링(Reshoring)이 아니다. 트럼프식 관세정책은 글로벌 생산거점의 지리·정치·경제적 재디자인을 요구하고 있다. 스텔란티스와 닛산의 멕시코 공장 생산중단, 현대차의 미국 내 210억 달러 투자 계획, 일본의 무기구매 연계 관세 면제 요청 등은 이러한 구조조정이 단지 경제적 결정이 아니라, 외교적 스왑과 정책 지렛대를 동반한 고차원 교섭임을 보여준다.

특히 현대차·기아차가 이미 미국 현지 생산 비중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관세 부담 회피를 위한 추가 증산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은, ‘현지 생산 비율 확대’만으로는 해소되지 않는 관세 구조의 정치성을 드러낸다.

무역 적자와 세수 확보, 이중 과세 전략의 출현

이번 상호관세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바와 같이 ‘감세를 위한 재원 마련’과도 연결된다. 관세 자체를 세수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재정-무역 연동형 구조’**가 부상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은 2024년 1조2천억 달러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반면, 서비스 수지에서 흑자를 내며 관세를 통한 세수 확보의 필요성을 공공연히 언급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외에, 관세를 세금처럼 사용하는 새로운 거시경제 프레임을 구축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세수 확보는 동시에 해외 생산의 미국 유인을 강제하는 일종의 ‘투자 조건부 탈출권’과 맞물리며, 글로벌 기업에게 구조적 투자 의사결정을 요구하게 된다.

시장 반응과 외교적 여진: ‘동맹을 가격으로 환산한 결과’

관세 발표 직후 금융시장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S&P500은 4.84%, 나스닥은 5.97% 급락했고, 글로벌 주가지수와 원자재 시장은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금은 사상 최고치인 3,200달러를 돌파했고, 주요 자동차 기업의 주가는 일제히 하락했다.

외교적 반응도 거세다. EU와 일본은 보복관세 가능성을 시사했고, 캐나다는 자국산 차량에 25% 보복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상호관세가 단순히 ‘미국 내 세금’으로 끝나지 않으며, 글로벌 무역 질서를 재편할 파장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번 조치가 정치적 타협의 여지를 남겨둔 채 시행되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여지가 있다”고 밝혔지만, 백악관 고위 관계자들은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며 협상 가능성을 차단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았다. 이는 관세를 ‘협상 수단’이자 ‘협상 불가능성의 수단’으로 동시에 활용하는 이중 전략으로 해석된다.

‘포스트 글로벌화’의 통상지형에 대비할 시간

관세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고정 변수인가, 혹은 협상 전술의 소모적 도구인가. 중요한 것은 그 자체보다 관세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세계 경제의 구조적 변화이다.

▶미국은 통상 정책을 통해 공급망, 외교, 산업 전략까지 통합 관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동맹국조차 ‘가격이 매겨진 거래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공급망은 이념 기반이 아니라, 세율·법률·산업비용 기반으로 재설계되는 중이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수출국들은 이 시점에서 단순한 대응을 넘어, ‘포스트 글로벌화’ 시대의 지속가능한 무역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와 반도체만이 아니라, 데이터·에너지·바이오 등 신성장 산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관세 정치’가 반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