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트렌드] 압수수색은 기록의 언어였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이 증언하는 언론의 저항 구조
정권의 폭력에 맞선 탐사보도의 윤리, 그리고 그 윤리가 영화가 되는 순간
[KtN 임우경기자] 2025년 4월 23일, 다큐멘터리 영화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이 개봉된다. 제목은 자극적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단지 한 정권의 범죄를 폭로하는 고발물이 아니다. 그것은 7년에 걸친 언론 탄압의 기록이며, 그 탄압에 응전한 탐사보도의 내부적 윤리를 정치적 내러티브로 정리한 ‘저널리즘의 자기 증언’이다.
김용진 감독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돌아왔다. 뉴스타파 전 대표, 그리고 탐사보도 최전선에서 압수수색의 당사자로 있었던 인물이다. 함께 등장하는 한상진, 봉지욱 기자 역시 권력의 위협 속에서 보도를 멈추지 않았던 탐사언론의 상징이다. 그들이 이번에는 기록의 주체이자 이야기의 대상이 된다.
저널리즘의 탈중립성, 그 불가피한 윤리
《압수수색》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다룬 사건의 무게 때문이 아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중립’이라는 명목 아래 침묵을 강요받던 언론이 직접 저항의 주체로 나서는 과정을 다큐멘터리로 구조화했다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김건희 씨 관련 자금 흐름, 명태균 게이트 등을 취재했고, 이에 따라 검찰은 2023년 뉴스타파를 압수수색하며 직접 탄압을 개시했다. 영화는 이 순간을 ‘기록’하지 않고, 직접 응전한 저널리스트들의 시점에서 재구성한다.
이는 관찰자의 윤리를 포기한 것이 아니라, 침묵이야말로 권력의 범죄에 협조하는 행위가 되었던 현실에 대한 저널리즘의 ‘선택적 개입’이다. 영화는 이 선택이 어떻게 윤리의 붕괴가 아니라 윤리의 확장으로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언론 탄압의 시작이 곧 내란의 시작이었다
헌법재판소는 2025년 윤석열의 파면 사유를 내란죄로 판단했다. 《압수수색》은 이 내란의 시작점이 단지 계엄령 문건이나 군 내부 회의가 아니라, 보도 기관에 대한 물리적 침탈, 즉 뉴스타파에 대한 압수수색이었다고 주장한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는 뉴스타파를 ‘범죄집단처럼’ 취급했고, 취재기록을 압수하고, 기자를 소환했으며, 내사 사실을 언론에 흘렸다. 이는 단지 불쾌한 압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정보를 봉쇄하고, 질문을 제거하며, 시민의 판단을 통제하기 위한 국가 폭력의 전형이었다.
《압수수색》은 압수라는 단어를 다시 써낸다. 그것은 더 이상 수사의 도구가 아니라, 권력의 언어이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법 전략이다. 저널리즘은 그 언어를 해독하며, 그 해독 과정을 스크린에 새긴다.
저널리즘의 구조적 고립, 그리고 연대의 필요성
영화는 단지 윤석열 정권과 뉴스타파의 충돌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충돌이 가능했던 구조, 즉 탐사보도 언론의 제도적 고립, 방송사의 상업화, 공영언론의 정치화, 검찰과 언론 사이의 비대칭 구조 등을 드러낸다.
한상진 기자는 영화에서 말한다. “우리가 공격받을 때, 아무 언론도 함께하지 않았다.” 그것은 저널리즘의 위기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 생태계 전체의 침묵이 빚은 구조적 방치였음을 드러내는 증언이다.
《압수수색》은 이 구조적 침묵을 고발하면서, 동시에 탐사보도 언론이 홀로 기록을 지속할 수 있었던 내부적 연대, 그리고 시민들의 비공식적 방어망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포착한다. 이 영화는 저널리즘의 물리적 연대를 제안하지 않는다. 윤리적 연대, 즉 기록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침묵하지 않는 선택을 호출한다.
저널리즘이 영화가 되는 순간, 기록은 정치적 선언이 된다
다큐멘터리가 단순한 아카이브를 넘어설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인가? 《압수수색》은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이다. 기록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없다. 특히 그 기록이 권력의 방해와 감시 속에서 이루어질 때, 저널리즘은 정치적 행위가 되며, 그 정치성이 오히려 진실을 보장하는 장치가 된다.
김용진 감독은 연출자로서가 아니라, ‘증언자’로 등장하며, 그 존재 자체가 저널리즘의 윤리를 상징한다. 한상진, 봉지욱 기자는 사건의 설명자가 아니라, 기록을 중단하지 않은 몸의 증거로 영화 속에 서 있다.
이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이 어떻게 영화가 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왜 저널리즘이 영화가 되어야 했는지를 설명한다.
기록은 증오가 아니라 저항이며, 저항은 윤리의 최종 형태다
《압수수색: 내란의 시작》은 영화사적 가치보다 더 중요한 언론사적 기록물이다. 그 기록은 감정을 소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조차 억압당했던 7년의 시간을 말 없이 해석해낸 언론의 언어로 구성된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윤석열 파면 이후 민주주의 복원이라는 역사적 전환점 앞에 있다. 그러나 그 복원이 단지 제도적 교체에 그친다면, 언론의 권리는 다시 침탈당할 수 있다. 이 영화는 그 경고이자, 민주주의가 지속되기 위해 언론이 무엇을 견뎌야 하는가를 보여주는 저널리즘적 텍스트다.
‘압수수색’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현대 언론사의 수치이자, 동시에 기록의 정당성을 다시 확보해낸 언론의 저항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