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N 기획] 한화 사태로 본 재벌 승계의 본질

'승계의 기술'이 시장 질서를 무너뜨릴 때,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구조적 리스크

2025-04-11     박준식 기자
사진=한화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준식기자] 한화그룹을 둘러싼 일련의 경영권 승계 논란은 한국 자본주의 구조의 한계와 모순을 다시 한 번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표면적으로는 기업 경영 합리화와 후계 구도의 정비로 포장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재벌식 승계'라는 낡고 위험한 시스템이 시장 질서를 교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번 한화그룹의 유상증자·지분 매각·지분 증여 사태는 그 자체가 한국 기업사회의 구조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교과서적 사례다. 본질은 명확하다. ‘기업가 정신’보다 ‘지배력 유지’에 최우선 가치를 두는 한국 재벌 특유의 경영 방식이 자본시장 시스템 전반에 어떤 파열음을 일으키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다.

방산 호황기의 '기습 유상증자'…재무 전략인가, 승계 재원 조달인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연간 2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방산 명가다.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 심화와 국방 수요 증가로 현금창출력이 대폭 확대된 상황에서 3조6000억원 규모의 대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한 배경은 매우 이례적이다.

기업금융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자본시장의 고전적 원칙은 자금조달의 우선순위가 내부 유보→저리 차입→유상증자 순이라는 점이다. 고수익 구조를 가진 기업이 외부 투자자 희석을 감수하면서까지 유상증자를 선택했다는 것은 다른 목적, 다시 말해 지배구조 관련 사안과 맞물려 있다는 신호로 읽힐 수밖에 없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번 유상증자가 단행되기 직전에 있었던 한화에너지(총수 일가 100% 소유)의 한화오션 지분 매각이다. 매각대금 약 1조3000억원. 이는 그룹 내 비상장 계열사의 현금 유동성 확보로 이어지고, 그 직후 상장 계열사의 유상증자를 통해 재무적 안전판을 마련하는 방식은, 재벌 승계 플랜의 전형적 구조다.

비상장 회사 가치 극대화, 한국식 지배구조 승계 알고리즘

한화그룹 승계 시나리오는 매우 정교하면서도 전형적이다.

① 비상장 계열사(한화에너지)에 일감을 몰아주고, 사내 유보와 내부거래를 통해 기업가치를 극대화한 뒤
② 상장 계열사(한화오션 등)와 전략적 거래를 통해 자산과 현금을 이전
③ 상장 후 또는 지주사(㈜한화)와의 합병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 정비

이는 삼성, 현대차, LG 등 한국 재벌이 반복해온 공식 그대로다. 다만 과거보다 정교해진 것은 사전 법률 검토와 공정위 규제 회피 전략이 치밀해졌다는 점이다.

이번 한화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총수 일가가 직접 지배하는 비상장 계열사를 통해 그룹의 핵심 자산(한화오션)을 매입하고, 그 비용을 상장사 유상증자로 충당하는 구조가 외형상 법적 문제는 없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반주주와 시장 질서를 훼손하는 방식으로 작동했다는 점이다.

한국 자본시장이 마주한 구조적 모순

자본시장 전문가들과 법학자들이 지적하는 한화 사태의 본질은 '법적 정당성'과 '시장 윤리' 간 괴리다. 한국 상법은 여전히 이사회의 충실 의무(duty of loyalty)를 '회사에 대한 의무'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 자본시장에서는 이사회가 회사 이익 뿐 아니라 주주 전체, 특히 소수주주의 이익 보호 의무를 함께 지니는 것이 보편적이다.

또한 공정거래법 역시 일감몰아주기나 부당지원 규제의 범위와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내부거래 공시 강화나 사익편취 규제는 강화되었으나, 비상장 계열사를 통한 편법적 지원 구조까지 실질적으로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번 한화 사례는 한국 자본시장의 선진화 수준이 여전히 '법률 준수' 수준에 머물러 있고, 시장 신뢰와 거버넌스 투명성이라는 질적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제도 개선의 방향 , 승계 그 자체보다 '승계 방식'의 혁신을

상법 개정의 시급성

▶이사회의 충실 의무를 '주주 전체'로 확대 명문화

▶경영권 승계와 관련된 주요 의사결정시 '소수주주 보호' 장치 강화

공정거래법 실효성 제고

▶내부거래, 일감몰아주기 규제 범위 확대

▶계열사 지원 행위에 대한 사전심사·사후공시 강화

자본시장법 공시 기준 개선

▶유상증자·합병 등 주요 지배구조 변경 이벤트시 세부 정보 공시 의무 강화

▶자금 사용 목적과 지배구조 영향 평가 보고서 의무화

시장 친화적 거버넌스 모델 구축

▶총수 일가 지배 계열사의 상장시 공정 시장가치 산정 의무

▶지배구조 개선 로드맵 사전 공시 관행 정착

 

한국 기업의 미래는 '법적 승계'가 아닌 '윤리적 승계'에 달렸다

한화 사태는 한국 자본시장이 재벌 중심 경제구조와 자본시장 선진화라는 두 개의 질서가 충돌하는 변곡점 위에 서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승계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승계의 과정에서 시장 신뢰와 소수주주 보호 원칙을 철저히 외면한 전략은 더 이상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통하지 않는다.

법적 정당성만으로 기업이 면책받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기업 지배구조는 법의 경계를 넘어 윤리적 정당성과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공정성을 기준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재벌 기업이 진정한 '국가대표 기업'으로 남기 위해 넘어야 할 문턱은 기술력이나 글로벌 확장 전략이 아니다. 자본시장의 신뢰, 그리고 시장과 주주 앞에 내세울 수 있는 지배구조 투명성이 그 기준이다. 한화 사태는 한국 기업사회 앞에 새로운 기준을 분명히 세웠다. 이제 그 기준 앞에서 어떤 기업도 비켜 설 수 없다. 

승계의 기술을 넘어서는 시대, 기업은 이제 '승계의 철학'으로 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