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브랜드의 종말, 플랫폼이 명품 산업을 지배한다

2025-04-12     임우경 기자
 런던 패션 위크에서 선보인 JW 앤더슨의 SS25 컬렉션은 시각적 트릭과 혁신적 디자인으로 패션 트렌드에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사진=Fillppo Fior/Gorunway.com,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글로벌 럭셔리 산업은 더 이상 과거의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산업구조가 바뀌면 경쟁의 법칙도 근본적으로 달라진다. 명품 산업에서 브랜드란 과거 오랜 시간 동안 제품과 유통, 디자인과 광고를 통해 차별화된 가치를 만들어내는 핵심 수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그 구조는 급격히 해체되고 있다.

이 변화의 본질은 산업 전략의 전환이 아니다. 지배구조의 전면적 변화다. 브랜드 간 경쟁을 넘어 브랜드 위에 군림하는 플랫폼 경쟁 체제, 이것이 오늘날 글로벌 럭셔리 산업이 진입한 새로운 지형이다.

프라다 그룹의 베르사체 인수는 그 상징적 사건이었다. 글로벌 명품 그룹들은 이제 브랜드를 수집하고 결합해 거대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산업 생태계를 재편하고 있다. 프라다, LVMH, 케어링 등 세계 최대 럭셔리 그룹은 브랜드를 산업 지배의 수단이 아니라 플랫폼 전략의 구성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플랫폼 전략은 고객 일상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더 이상 브랜드는 제품을 파는 기업이 아니다. 브랜드는 공간을 만들고, 스포츠와 문화를 확장하며, 고객의 모든 생활 접점을 브랜드 경험으로 통합한다. 스포츠웨어, 홈웨어, 가구, 지역 문화 협업은 결코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플랫폼 전략이 작동하는 산업구조적 방식이다.

한국 패션·유통 산업이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국내 명품 시장은 세계 7위 규모를 기록했으나, 여전히 글로벌 브랜드 플랫폼의 소비 전진기지 역할을 수행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자체 플랫폼 전략이 부재한 기업은 브랜드 경쟁력조차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오고 있다. 산업구조가 변한 만큼 기업 전략의 본질도 바뀌어야 한다.

생존의 조건은 더 이상 상품 기획이나 매장 운영 역량이 아니다. 고객 일상을 장악하는 플랫폼 설계 능력, 브랜드 경험을 생태계로 확장하는 전략적 역량, 장인정신과 로컬 문화 자산을 새로운 가치로 전환하는 기획력이 기업 생존의 기준이 되었다.

앞으로 남는 기업은 명확하다. 규모로 승부하는 기업이 아니라 구조를 이해하는 기업, 단기 실적을 추구하는 기업이 아니라 산업질서를 새롭게 재구성하는 기업이다.

한국 패션·유통 기업들이 준비해야 할 것은 상품을 넘어선 산업구조적 전략이다. 브랜드가 플랫폼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기업은 글로벌 생태계 경쟁에서 그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럭셔리 산업은 이미 새로운 언어를 말하고 있다. 그 언어를 먼저 이해하는 기업만이 다음 무대에 설 수 있다. 브랜드의 시대는 끝났다. 플랫폼만이 살아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