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권력 사유화 이후 남겨진 것
시스템 없는 정치, 한국 민주주의는 어디로 가는가
[KtN 최기형기자]한국 정치가 무너졌다. 정당은 해체되었고, 국회는 무기력하며, 사법 시스템은 신뢰를 잃었다. 국가 권력은 사유화되었고,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었던 법 앞의 평등은 흔적만 남았다.
내란 사태 이후 한국 정치는 파면된 권력자 한 명을 넘어선 구조적 위기를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퇴장은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국가 시스템 붕괴의 징후에 불과하다.
정치는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질서다. 그러나 지금 한국 정치에는 그 시스템이 사라지고 있다. 권력은 남았으나 책임은 사라졌고, 법은 남았으나 공정성은 무너졌다.
특히 정당의 붕괴는 한국 정치 위기의 핵심이다. 국민의힘 내부 권력 구도가 보여주는 충성 경쟁 정치, 후계 구도 싸움은 정당이 더 이상 정치적 대표성이나 사회적 공론 형성의 공간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준다. 정당 없는 정치, 정책 없는 권력만이 남아 있다.
사법 시스템 위기 또한 심각하다. 권력을 견제해야 할 사법부와 검찰이 권력에 종속되거나 예외를 인정하는 순간, 법치주의는 무너진다. 윤석열 전 대통령 재판을 둘러싼 법원의 특혜 논란, 검찰 항소 포기 우려는 법 위의 권력이라는 구조적 병리가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위기는 권력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정치 시스템이 본래 작동해야 했던 구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정치란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이다. 권력자의 성향이나 의지에 의존하는 정치 구조는 언제든 실패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정치 시스템 복원은 그래서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근본적 과제다. 무엇보다 정당 민주주의의 본질적 복원이 시급하다. 상향식 공천, 청년·중도 대표성 확대, 정책 정당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사법 시스템 또한 독립성과 공정성을 다시 세워야 한다. 검찰권의 정치화 방지, 법원 재판의 투명성 강화, 수사·기소권 분리 등은 반드시 추진돼야 할 제도적 개선이다.
나아가 한국 정치의 권력구조 자체를 재설계할 시점이다. 대통령 권한 집중 구조를 해체하고, 국회의 권한을 확대하며, 독립 감사·감시기관을 강화하는 것은 권력 사유화를 막기 위한 필수적 장치다.
시민사회의 감시 역량과 언론의 독립성도 정치 시스템 복원의 마지막 기둥이다. 권력을 감시하는 시민, 권력에 질문하는 언론 없이는 정치 시스템은 복원될 수 없다.
정치는 책임의 언어이며, 신뢰의 구조다. 권력 사유화 이후 남겨진 폐허 위에서 한국 정치가 다시 세워야 할 것은 새로움이 아니다. 정치 본연의 원칙과 시스템을 복원하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 무엇으로 정치할 것인가.
그 답은 멀리 있지 않다. 정치란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질서다. 정치란 결국 시스템 그 자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