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트렌드①]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5, '레트로 퓨처리즘'의 귀환
오브제와 조명, 기술보다 인간의 손맛을 말하다
[KtN 임우경기자] 2025년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다시 한번 세계 디자인 산업의 미래를 가늠하는 무대가 됐다. 그 중심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기반 스튜디오 언폼 스튜디오(Unform Studio)가 있었다. 이들은 첫 조명 컬렉션과 가구 라인업을 통해 "다르게 상상한 미래"를 제안했다. 기계적 완성도를 내세우는 일반적 '스페이스 에이지' 스타일과 달리, 언폼 스튜디오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미래상을 선언했다.
기술 중심 디자인의 피로감이 낳은 새로운 코드
밀라노 현지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띈 점은 레트로 퓨처리즘(ReTro Futurism)의 재해석이다. 언폼 스튜디오는 '오빗 컬렉션(Orbit Collection)'과 '액시스 조명(Axis Collection)'을 통해 미래적 조형 언어를 사용했지만, 차가운 기계 문명 대신 유기적 소재와 수공예적 감각을 전면에 내세웠다.
월넛 원목, 부드러운 곡선, 내추럴 블루 패브릭으로 구성된 오빗 체어와 테이블은 폴리시드 크롬(Pished Chrome) 디테일과 대비를 이루며 과거적 상상력 속 미래를 구현했다. 이는 단순한 복고 디자인이 아닌, 기술 지향 사회에서 '인간 중심 디자인'으로 전환하려는 의지를 품은 메시지였다.
조명 컬렉션인 액시스 시리즈 역시 동일한 철학을 관통한다. 미니멀한 금속 조형, 균일한 디자인 시스템, 내재된 빛의 포털(Portal)은 감각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도로 정제된 형태 언어 속에서도 공간의 온도를 높이는 장치로 조명이 재구성된 셈이다.
고급 디자인 산업의 새로운 가치 전환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5의 언폼 스튜디오 사례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이는 글로벌 하이엔드 디자인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4차 산업혁명 이후 전 세계적으로 기술적 완성도가 평준화되는 가운데, '인간적 손맛' '소재의 진정성' '기능보다 감성'이 고급 디자인의 핵심 가치로 재부상하고 있다.
특히 한국 시장에서 주목할 점은 고급 가구·조명 산업이 여전히 '기술=프리미엄'이라는 도식을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술적 스펙 경쟁보다는 브랜드 철학, 유기적 감각, 공간성 확대 전략이 한국 프리미엄 디자인 산업의 차세대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언폼 스튜디오가 보여준 방향성은 단순히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잡는 수준이 아닌, 한국 로컬 디자인 산업이 고유한 언어와 가치를 발굴해 나갈 수 있는 기회로 읽힌다.
기술 너머의 디자인, 한국은 준비됐는가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5는 고급 디자인 산업의 가치 전환을 상징하는 장면을 만들어냈다. 기술적 완성도는 더 이상 프리미엄 디자인의 절대 기준이 아니다. 산업의 무게중심은 인간의 손길과 소재의 진정성, 그리고 감각적 언어를 기반으로 재편되고 있다.
기계적 정교함과 표준화된 기술은 이미 글로벌 시장 전반에 보편화되었다. 고급 디자인 시장이 요구하는 새로운 경쟁력은 브랜드 철학과 제작자의 태도, 그리고 공간에 대한 해석 능력이다. 디자인을 단순한 물리적 제품이 아닌 문화적 자산으로 전환시키는 힘이 산업적 차별성으로 작동하고 있다.
한국 디자인 산업이 직면한 구조적 한계는 여기에 있다. 기술적 추격과 글로벌 브랜드 수입에 집중해온 시장 구조는 본질적 전환 없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 고급 디자인을 외부에서 가져오는 소비재로 소비하는 산업 구조는 결국 로컬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창작 역량을 축적하지 못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자기 언어와 자기 철학을 구축하는 산업 전략이다. 소재를 다루는 기술, 공간을 해석하는 감각, 브랜드 세계관을 설계하는 기획력이 한국 디자인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게 된다.
밀라노 디자인 위크 2025는 그 방향성을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기술과 기능을 넘어서는 감각적 리더십과 창작 역량이 고급 디자인 산업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산업의 미래는 준비된 시장만이 선점할 수 있다. 한국 디자인 산업 역시 그 전환의 문 앞에 서 있다. 준비하지 않은 시장은 더 이상 존재감을 확보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