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화국 재건 없는 정권교체는 민주주의 복원이 아니다
[KtN 최기형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은 분명 헌정사에 길이 남을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 정치적 무게와 별개로, 헌정질서는 여전히 복원되지 않았다. 내란을 기획하고 실행한 권력은 물러났지만, 그 권력을 가능하게 했던 구조는 건재하다. 계엄을 묵인한 행정관료, 권한을 초과한 검찰, 침묵으로 일관한 사법부, 정무적 중립을 상실한 정보기관은 조직적으로 재구성되지 않았고, 오히려 파면 이후의 정치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권력의 해체 없이 권력자만 교체된 셈이다.
현 체제는 ‘무너진 대통령제’의 연장선 위에 있다. 선출되지 않은 권한대행이 대통령의 핵심 권한을 행사하며 실질적 권력의 주체로 부상했고, 그 권한 행사가 대선 출마 명분과 직결되면서 체제의 비정상이 공고화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헌법재판관을 지명했고, 추경안을 조정했으며, 통상외교를 자의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 모두는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해당한다. 헌정 체계가 잠정적으로 허용한 ‘임시직 대행 체제’가 실질 권력의 구조로 고착되는 상황은 국가 체제의 심각한 왜곡이다.
이런 위기를 정면에서 다룰 주체는 정치다. 그러나 지금 정치권은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을 ‘내란 종식의 정치’로 규정했지만, ‘종식 이후의 체제 복원’에 대해서는 전략적 침묵에 가깝다. 정권교체는 하나의 수단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대한민국은 지금, 대통령을 다시 뽑는 선거가 아니라 공화국을 다시 설계하는 선거를 앞두고 있다. 제도를 복원하지 않는 정권교체는 허상이며, 권력 구조를 해체하지 않는 정치 교체는 또 다른 파국을 예고할 뿐이다.
실제로 지금 정치가 외면하고 있는 핵심은 ‘권력의 구조적 복원’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윤석열 체제의 토대가 되었고, 검찰은 독립을 상실한 채 정치적 충견으로 기능했다. 사법부는 이례적인 특혜를 부여하며 피고인을 방어했고, 행정부는 스스로의 독립성을 포기한 채 출마용 정책 설계를 자임했다. 이 구조를 남긴 채 정권만 교체하면, ‘윤석열 없는 윤석열 체제’는 형태만 바꾼 채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인물 중심의 정치교체가 아니라 제도 중심의 체제교체다.
이 과정에서 정치가 가장 먼저 다뤄야 할 과제는 ‘정의의 제도화’다. 내란특검은 정치적 복수 수단이 아니라, 헌정질서를 회복하는 입법적 기초다. 윤석열 개인을 기소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엄에 가담하거나 증거를 인멸한 권력집단 전체에 책임을 묻는 구조적 정의 실현이 필요하다. 이 특검이 무산된다면, 어느 권력도 다시는 헌법을 존중할 이유를 갖지 못하게 된다. 민주주의의 회복은 수사나 구속이 아니라, 반복 불가능성에 대한 정치적 합의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정치가 설계에 실패하면 체제는 붕괴하고, 그 붕괴는 반복된다. 국민의힘은 여전히 내란에 대한 당론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당의 일각은 내란의 정치적 잔재와 결합한 채 단일화를 모색하고 있다. 일부는 한덕수, 이준석 등과의 비정당 연합을 시도하며 윤석열의 정치적 유산을 부활시키려 한다. 이 시도는 책임 없는 권력의 재구성이며, 헌정복원의 정당성을 침해하는 또 다른 위기다.
대통령 파면 이후 국정이 정상화되려면 대행 체제가 조속히 종료되어야 한다. 선출되지 않은 권한대행이 선거판에 뛰어드는 순간, 선거는 공정성을 상실하고 정치 시스템은 구조적 정당성을 잃는다. 권한대행 체제의 장기화는 내란 정국의 연장이다. 지금은 권한대행의 출마 여부를 문제 삼을 때가 아니라, 그 체제 자체를 종료시킬 방법을 논의할 시간이다. 국회는 그 방법을 제시해야 하고, 정치권은 이에 동의해야 한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아니라, 어떤 체제를 복원할 수 있느냐다. 단죄 없는 정치는 정의를 무너뜨리고, 설계 없는 정치는 공화국을 반복된 파국으로 몰아넣는다. 이번 선거는 체제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 되어야 하며, 정치권은 그 질문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권력을 교체할 수 있는 순간이 아니라, 체제를 회복해야 하는 시간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