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트렌드③] 뇌형 반도체와 한국경제: 산업 구조는 어떻게 바뀌는가

뉴로모픽 기술이 촉발하는 반도체 패러다임 재편과 경제적 전환

2025-04-19     박채빈 기자
김경민교수팀. 사진=FuST 연구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박채빈기자] AI 반도체 산업의 중심축이 CPU·GPU 기반의 중앙처리 구조에서 뉴로모픽 기반 국지 연산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이 전환은 단순한 기술 세대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정보가 저장되고, 해석되고, 사용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면서, 산업 구조와 기술 생태계 전반이 재정렬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주도해온 전통 메모리 반도체 중심 구조는 데이터 저장량과 속도 경쟁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지녀왔지만, 뉴로모픽 기술의 부상은 ‘저장’을 넘어 ‘이해’의 영역으로 반도체의 역할을 확장시키고 있다. KAIST 김경민 교수팀이 개발한 ‘뉴랜지스터(Neuransistor)’는 이러한 전환의 한가운데서 새로운 산업 좌표를 제시하고 있다.

반도체 산업, 연산 방식의 변화가 공급망 전환으로 이어지는 구조

전통적인 반도체 산업은 저장 장치(DRAM, NAND), 연산 장치(CPU, GPU), 입출력 인터페이스가 분리된 구조를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뉴로모픽 반도체는 연산-저장-학습이 통합된 단일 구조로, 물리적 이동 없이 실시간 처리가 가능한 구조를 지향한다. 이 변화는 반도체 제조공정, IP 설계, 패키징, 전력관리, 응용 소프트웨어까지 연쇄적인 영향을 미친다.

공정 측면에서는 트랜지스터의 스위칭 속도보다 신호의 맥락 해석 능력이 중요해지며, 기존 로직 회로 설계 대신 시냅틱 가중치 기반의 아날로그 회로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PIM 기술에 집중하는 것도 이 흐름의 일환이며, 뉴랜지스터처럼 뉴런 구조 자체를 반도체 소자로 구현하는 기술은 새로운 설계 생태계를 요구한다.

응용 산업 구조: AI 내장형 시스템이 산업 전반에 침투

뇌형 반도체의 본질은 연산 성능을 넘어서 기계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 변화는 자동차, 의료, 국방, 제조, 에너지 등 실시간 의사결정이 필요한 산업에서 ‘탑재형 AI 시스템’의 확산으로 연결된다.

▶자율주행차: 센서 신호 해석과 실시간 경로 판단을 로컬 AI 칩이 직접 수행

▶스마트 제조: 기계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율공정 구조

▶의료기기: 뇌전도·심전도 등 생체신호를 실시간 해석하는 개인화 진단 장비

▶에너지 시스템: 분산형 전력망에서 수요 예측과 최적 분배를 담당하는 엣지 AI

기존 중앙처리형 AI 연산 구조로는 만족시킬 수 없는 즉시성, 안정성, 에너지 효율이 요구되는 영역에서 뉴로모픽 칩은 필수적인 구조가 된다. AI 기술이 하나의 제품이 아닌 ‘내장된 연산 시스템’으로 변할 때, 반도체 산업은 단일 품목 중심의 수직 통합에서, 수평적 확산 구조로 산업지형이 바뀌게 된다.

김경민교수팀. 사진=FuST 연구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국경제의 전략적 재정렬 필요성

한국 반도체 산업은 세계 메모리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는 여전히 설계 기반 종속 구조에 놓여 있다. 뉴로모픽 기술은 이 격차를 단축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자 설계 자체가 새로운 영역이기 때문에, 초기부터 독자적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구조적 유연성이 존재한다.

KAIST의 뉴랜지스터는 소재 개발, 소자 설계, 회로 구현까지 수직 계열화가 가능하며, CMOS 공정과의 호환성도 확보되어 있다. 이는 한국 반도체 산업이 메모리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기능 중심의 연산 플랫폼 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전략적 의의가 크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산업계-정책 당국 간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 기술이전과 사업화, 팹리스·파운드리 연계, 국산 소자-회로 설계 연동 구조 등 생태계 전환을 위한 정책 기반이 시급하다. 특히 뉴로모픽 기술은 단기간에 수율과 매출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중장기적 투자가 전제되어야 하는 ‘전략적 산업’으로 분류되어야 한다.

기술과 정책의 비대칭 구조

현재 한국의 반도체 정책은 여전히 생산량, 수출, 공정 효율 중심에 머물러 있다. 반면 글로벌 경쟁은 기술의 철학적 깊이와 구조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뉴로모픽 기술은 단순한 연구개발이 아니라, 산업 전체의 구조를 재편하는 기술적 기획력을 요구한다.

기술적 가능성과 설계 완성도에 비해, 뉴랜지스터와 같은 독창적 기술이 산업화 전략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국내 기술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생산-설계-응용 간 단절, 기술 주도 기업에 대한 전략적 금융 및 법제 미비, 수요 기반 테스트베드의 부재 등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과제다.

KtN 리포트

뇌형 반도체 기술은 연산 구조의 물리적 재구성을 넘어, 인간의 사고방식과 기계의 작동 원리를 접목시키는 시도다. 이는 단순한 소자 혁신이 아니라, 정보사회 구조 전체의 해석 방식이 전환되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이 흐름을 단순한 파운드리 투자 경쟁으로만 이해할 경우, 기술 생태계의 주도권은 또다시 외부에 내줄 수밖에 없다. 뉴로모픽 반도체는 새로운 경제질서를 선점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그 기회는 기술의 정밀도뿐 아니라, 산업 전략과 국가적 기획력에 의해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