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 트렌드②] 팬덤의 세분화와 언어 장벽의 공존
정서적 연결은 깊어졌고, 소통의 한계는 여전했다
[KtN 임우경기자]한류 콘텐츠의 국제적 확산은 팬덤의 지형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2025년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는 여전히 글로벌 최선호 한국 가수 1, 2위를 유지했으며, 아시아와 미주, 중동, 아프리카 전역에서 그 영향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 성과의 구조는 과거와 다르다. 더 이상 ‘그룹’이라는 단일 브랜드가 전면에 서지 않으며, 개별 멤버 단위의 선호와 소비가 팬덤을 재구성하고 있다.
정국, 지민, 로제, 리사 등 개별 아티스트가 지역별로 독자적인 브랜드처럼 작동하고 있으며, 팬덤의 개인화, 정체성화 경향과 맞닿아 있다. 소비자는 콘텐츠가 아니라, 콘텐츠를 구현하는 ‘존재’를 선택하고 있으며, 음악 산업의 수직 구조에 균열을 야기하는 동시에, 콘텐츠 소비를 ‘정서적 연대 행위’로 전환시키고 있다.
참여 욕구는 높아졌고, 오프라인 접촉은 미흡했다
팬덤은 더 이상 수동적인 시청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공동 창작자이자 콘텐츠의 유통 채널로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2025년 실태조사 결과는 한 가지 불일치를 드러낸다.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팬 이벤트 부족’이 주요한 콘텐츠 호감 저해 요인으로 꼽혔다. 음악 자체에 대한 선호는 높지만, 실제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부족했다.
이 현상은 온라인 중심의 콘텐츠 소비 구조가 오프라인 팬덤과의 간극을 확대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K-POP은 고도화된 디지털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글로벌 인지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로컬 팬과의 물리적 접점을 꾸준히 확보하지 못할 경우, 피상적 소통에 머무를 위험성이 커진다.
참여의지와 현장성 사이의 간극은 ‘소속감’의 약화를 낳는다. 현지 팬들은 콘텐츠를 ‘보기’보다 ‘함께 느끼는 것’을 원하고 있으며, 콘텐츠 전략이 단순 유통 단가가 아닌 문화적 접촉 밀도를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언어는 여전히 가장 단단한 벽이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된 가장 큰 장벽은 ‘한국어의 생소함’과 ‘자막/더빙의 불편함’이었다. 7년 연속 동일한 결과는 콘텐츠 수용성의 하위 구조에 여전히 언어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중동과 유럽,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장벽이 더욱 명확히 나타났다.
2025년 조사에 새로 포함된 한국어 항목은 의미심장한 결과를 보여준다. 전체 한류 경험자 중 26.8%가 한국어 학습 경험을 갖고 있었고, 절반은 ‘콘텐츠 이해’를 주된 학습 동기로 꼽았다. 학습 동기는 실용적 소통보다 문화적 관심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한국어가 단순한 언어를 넘어 문화적 상징체계로 기능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하지만 실질적인 접근성은 여전히 낮았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의지가 있음에도, 교육기관을 찾을 수 없다’는 응답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에서 압도적으로 높았다. 한국어에 대한 관심은 명확히 존재하나,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취약하다.
한국어는 ‘특정 국가의 언어’가 아닌, 문화 소비권의 키워드로 부상하고 있다. 언어를 통해 한국 콘텐츠와 더 깊이 연결되기를 원하는 글로벌 이용자들의 수요에 비해, 공급 시스템은 구조적 한계에 머물러 있다.
한류 지속 가능성의 구조, 언어와 팬덤의 이중 축
팬덤은 개인화되고, 언어는 문화화되고 있다. 콘텐츠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정서적 공동체가 ‘문화적 국경선’을 다시 그려가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플랫폼 전략, 교육 제도, 국가 차원의 언어 확산 계획은 단기 캠페인이 아닌 지속 가능한 문화 인프라로 구축되어야 한다.
한국 콘텐츠는 언어적 진입 장벽을 뛰어넘는 감각적 소구력을 확보했지만, 감각을 장기적 관계로 전환시키기 위해선 ‘정서의 언어화’, ‘참여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팬이 되는 경험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 교류로 이어지기 위해, 콘텐츠 전략은 플랫폼을 넘어 로컬 문화권 안에서 물리적 공간과 제도적 지원을 확보해야 한다.
2025년 현재, 콘텐츠는 세계 어디에서나 소비될 수 있다. 그러나 콘텐츠와 사람 사이의 연결은 여전히 언어와 공간을 필요로 한다. 연결을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한류의 다음 10년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기억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