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문화 트렌드③] 콘텐츠의 경계를 넘은 인식 전쟁

문화는 소비되었고, 정치는 인식되었다

2025-04-18     임우경 기자
가슴 후비는 대사로 눈물샘 자극  사진=2025 03.19 넷플릭스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임우경기자] 한국 콘텐츠는 오랫동안 ‘비정치적 상품’이라는 위장 아래, 전 세계의 취향에 침투해 왔다. 그러나 2025년 한류는 더 이상 단순한 취향이나 콘텐츠를 넘어, 정치적 맥락과 인식의 경합 속에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화는 소비되었지만, 그 잔상은 정치를 소환했다. 이번 해외한류실태조사에서 확인된 부정 인식의 급증은 그 단적인 징후다.

2025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한류에 대한 부정 인식 공감률은 37.5%. 2020년 대비 17.4%p 상승한 수치로, 최근 5년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콘텐츠 품질에 대한 문제보다 정치적, 구조적 요인이 부정 인식의 주요 원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특히 인도(52.7%), UAE(52.0%), 홍콩(50.0%)은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부정 인식에 동의했다.

외부 요인의 급부상, 콘텐츠를 둘러싼 정세의 변화

‘지나친 상업성’(15.0%)은 여전히 첫 손에 꼽혔지만, 비율은 해마다 줄고 있다. 오히려 ‘남북 분단 및 북한 위협’(13.2%), ‘자국 산업 보호 필요성’(11.8%), ‘한류스타의 비윤리적 행동’(11.4%) 등 콘텐츠 외부의 요인들이 부정 인식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한류 콘텐츠가 단순한 시청 대상이 아닌, 한국 사회 전반을 대표하는 일종의 ‘문화 외교체’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콘텐츠는 더 이상 자율적인 감상의 대상이 아니며, 특정 국가의 정치·사회적 정체성을 반영하는 상징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히 남북관계는 글로벌 이용자에게 정치적 리스크로 작동하고 있다. 콘텐츠 자체와는 무관하게, ‘북한’이라는 키워드가 콘텐츠에 대한 신뢰와 정서적 거리를 재설정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 콘텐츠의 탈정치화 전략이 갖는 구조적 한계를 드러낸다.

콘텐츠의 품질은 오히려 논란에서 벗어났다

주목할 점은 콘텐츠의 상업성, 자극성, 획일성에 대한 비판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5년 전만 해도 콘텐츠 품질 관련 요인이 한류 피로감의 핵심이었으나, 2025년에는 이 비율이 대폭 하락했다. 상업성(28.9%→15.0%), 선정성(12.6%→9.7%), 획일성(28.0%→8.2%) 모두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한국 콘텐츠의 내적 완성도, 장르 다양성, 서사 구조에 대한 신뢰가 점차 축적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콘텐츠는 더 이상 싸구려 감정 자극 장르로 취급되지 않으며, 국제적 품질 기준에 부합하는 문화 자산으로 간주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콘텐츠 자체가 고도화될수록 콘텐츠를 바라보는 외부 시선은 더 복잡해지고 있다. 콘텐츠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거나 지지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여겨지는 순간, 그 자체로 논쟁의 대상이 된다.

사진=2025 04.17  빌리프랩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한류는 외교다

2025년 한류는 더 이상 ‘소프트 파워’라는 추상적 수사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드라마나 K-POP이 외교 무대에서 활용되는 순간, 콘텐츠는 국가의 사회구조, 인권, 정치 체계에 대한 질문을 유발한다. 실제로 콘텐츠 경험 후 ‘한국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변했다’는 비율은 67.1%였고, ‘한국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도 58.9%로 나타났다. 문화가 경제로 이어지는 경로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경로는 더 이상 일방적이지 않다.

콘텐츠를 소비한 후 인식이 ‘부정적으로 변화했다’는 응답이 일본, 독일,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 점은, 문화 소비가 국경을 넘더라도 인식은 국가적 맥락 속에서 작동함을 보여준다. 글로벌 콘텐츠 전략이 각국의 정치·사회적 환경을 감안한 유연한 설계 없이는 피로감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확산 이후, 접촉의 구조를 재설계해야 할 때

문화의 소비는 인식의 전장을 형성한다. 콘텐츠의 확산은 이미 달성된 성과이며, 다음 단계는 인식의 정교화다. 한류는 더 이상 ‘좋아하는 콘텐츠’가 아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 콘텐츠’가 되었으며, 해석의 주체는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 사용자다.

정치적 오해를 줄이고, 문화적 접점을 넓히기 위한 전략은 콘텐츠 자체보다, 콘텐츠 이후의 소통 구조에 달려 있다. 문화 교류는 확산보다 접촉의 설계에 있고, 문화 외교는 감정의 통역을 필요로 한다.

한류는 소비자의 마음에 남아야 한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을 넘어서, 인식의 구조 안에서 책임 있는 주체로 자리해야 한다. 문화의 파급력이 커질수록, 그 파장이 닿는 곳의 정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