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 트렌드] 메이슨 ISDS 항소 포기, ‘국가 책임의 사법화’와 삼성 구상권의 기로
국민이 갚고, 책임자는 빠지는 불법 합병의 청구서
[KtN 최기형기자] 정부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외국인 투자자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860억 원을 배상하게 된 메이슨 ISDS 사건에서, 결국 항소를 포기했다. 단순한 중재판정 종료가 아니다. 이는 한국의 사법적 정당성과 국가재정의 공정성이 거대 자본과 결탁한 권력 구조 앞에 어떻게 침묵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번 사건은 ‘삼성불법합병’이라는 한국 자본주의의 상징적 왜곡과, 이를 비호해온 국가권력의 합작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함의를 갖는다.
삼성 합병의 불법성, 그리고 외국 법정의 단죄
2015년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단순한 기업 인수합병이 아니었다. 당시 제일모직 대주주였던 이재용 회장이 그룹 지배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결정적 수단이었으며, 그 이면에는 박근혜 정부와 국민연금의 ‘정치적 개입’이 있었다. 국제중재판정부와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은 이러한 정부 개입을 한미 FTA상 외국인 투자자 보호 의무 위반, 즉 ‘국가의 최소기준대우 의무 위반’으로 단정했다.
결국 미국계 사모펀드 메이슨은 자국 투자 보호 협정에 따라 손해 배상을 받게 되었고, 한국 정부는 국민 세금으로 그 비용을 부담하게 됐다. 법률비용과 지연이자를 포함한 총액은 약 860억 원. 그러나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책임이 정부에 귀속된다는 사실보다도, 정작 불법 합병의 수혜자에게 그 책임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배상은 ‘국민 몫’, 책임은 공백
메이슨 ISDS 사건은 단순히 한미 FTA상의 국가 책임 문제가 아니라, 더 깊이 들어가면 한국 사법체계의 무력화와 재벌 권력의 무책임 구조를 드러낸다. 이재용 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정경유착 혐의로 유죄가 확정됐지만, 정작 합병과 관련된 형사 1심 재판에서는 무죄를 받았다. 삼성물산 주주였던 국민연금은 합병에 찬성했다가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었지만, 외국계 펀드만이 배상을 받는 ‘역차별 구조’가 법적으로 승인된 셈이다.
정부는 항소를 포기한 명분으로 ‘법리적 실익 부족’과 ‘국익 고려’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 되지 않는다. 결국 ‘정부가 국가 책임을 떠안는 방식’으로 사건을 마무리 지으면서, 당시 권력과 손을 잡고 사익을 추구한 당사자들에 대한 구상권 청구는 여전히 ‘검토 중’이라는 허울만 남았다.
정부의 구상권 청구는 이제 선택이 아닌 ‘법적·도덕적 책무’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는 즉시 이재용 회장과 박근혜 전 대통령을 상대로 구상권을 행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엘리엇 ISDS와 메이슨 ISDS를 합하면 약 2,300억 원에 달하는 국민 부담이 발생했으며, 이는 ‘불법을 방조한 책임’을 그대로 공적 재정이 감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 편향 구조의 균열과 사법의 의무
법원과 정부는 지금까지 삼성 불법 합병 사건에서 반복적으로 책임을 회피해왔다. 박영수 특검팀이 밝혀낸 정경유착의 실체는 국제중재와 대법원 판결을 통해 ‘불법’으로 규정됐지만, 정작 이재용 회장의 형사 책임은 모호하게 매듭지어졌다. 이는 단순한 사법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재벌 시스템이 만들어낸 권력 면책 구조의 복제이자, 법이 자본에 굴복해온 과정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국내 법원은 메이슨 사건에서조차 국민연금 손실이나 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책임을 외면한 채,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결과, 삼성은 지배구조 개편을 이뤘고, 외국 펀드만이 배상을 받으며 떠났고, 손해는 국민 몫이 됐다.
국제사회가 인정한 불법에 대해 국내 사법부가 면죄부를 부여하는 상황은 법치의 근본을 흔든다. 이제라도 남아 있는 대법원 판결에서 이재용 회장의 실질적 책임을 명확히 규명해야 하며, 정부는 더 이상 지체 없이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
‘국가와 자본의 유착’에 대한 최종 청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메이슨 ISDS 사건은 단순한 배상금 분쟁이 아니다. 정부가 정권과 거대 재벌의 공모로 인해 국제사법무대에서 패소한 사건이자, 국민의 세금이 자본 권력의 면죄부로 쓰이는 구조의 반복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ISDS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이지만, 한국에서는 국가 책임의 외주화, 자본 이익의 사법화로 귀결됐다. 이대로 구상권 청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정부는 불법을 방조하고 국민에 대한 도덕적 책임조차 저버리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재용 회장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라는 요구는 단지 법적 정당성의 문제를 넘어, 한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공정함과 정의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부의 ‘검토 중’이라는 모호한 언사보다, 국민을 위한 실질적 정의의 실행이다. 국가 책임의 마감일은 지났다. 남은 것은 실천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