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렌드①] 추경인가, 정치 쇼인가
12.2조 원으로 버티는 민생, 회생의 조건은 없다
[KtN 최기형기자]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2조 2천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정치권의 중심 이슈로 부상했다. 산불, 관세 압력 등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긴급 재정 운용이라는 명분 아래 편성된 이번 추경안은, 내수 회복과 소비 진작이라는 핵심 과제를 소외시킨 채 형식적 대응에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추경안을 '언 발에 오줌 누기'로 규정하며, 구조적 경제 침체와 민생 붕괴의 실질적 해결책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윤석열 정권 3년간의 실정으로 무너진 민생경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폭적인 추경 증액이 필수적”이라고 단언했다.
통계로 드러나는 ‘축소 추경’의 한계
정부가 제출한 추경안 가운데 민생지원 항목은 4조 3천억 원 규모에 불과하다. 전체 예산의 3분의 1 수준에 해당하며, 나머지 7조 6천억 원은 통상 대응 및 재해복구에 집중되어 있다.
허영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간사는 “정부안은 국내총생산 증가율에 미치는 영향이 0.1%에 그치는 수준”이라고 비판하며, “경제 회복의 마중물 역할은커녕 명분도 실리도 없는 축소 추경”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이미 지난 2월, 35조 원 규모의 자체 추경안을 정부에 제안한 바 있으며, 내수 침체와 자영업 붕괴, 지역경제 위축에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 재정 확대를 요구해왔다.
정부가 제시한 주요 소비 진작 사업은 온누리상품권 환급 정책으로, 연매출 30억 원 이하 소상공인의 신용카드 사용액 증가분의 20%를 환급해주는 구조다. 그러나 사용처가 전통시장 등으로 제한되어 있어 실질적 소비 확산 효과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허영 간사는 “지역화폐 등으로 환급 수단을 다양화하고, 더 많은 영세 상공인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사업 설계를 근본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상목 부총리의 ‘회계 정치’…책임 없는 설계
정책의 방향성과는 별개로, 예산안 설계의 신뢰성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도 거세다. 민주당은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재해 예비비 항목에 일반 예비비 4천억 원을 포함시켜 편법적 회계 처리를 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박찬대 대표는 “예비비를 마치 쌈짓돈처럼 끼워 넣는 방식은, 경제위기 대응의 진정성과 책임 의식을 의심케 한다”고 일갈했다.
최상목 부총리는 오는 24일 미국에서 열릴 한미 고위급 통상협상에도 참여할 예정이며, 재정과 외교의 두 축에서 모두 현 정부의 책임자로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경제정책의 설계자가 경제 실패의 책임자이기도 하다"며 전면 교체론을 제기하고 있다.
재정운용, 위기 구조를 읽지 못한 선택
2025년 대한민국 경제는 대형 산불, 관세 압력, 민생 소비 위축, 자영업 몰락 등 복합 위기를 동시다발적으로 겪고 있다. 단순 재난 대응이 아닌 구조적 회복을 위한 예산 운용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추경안은 그러한 구조 인식 없이 ‘긴급’이라는 형식 논리로 재정을 분절적으로 배분하는 데 그쳤다.
AI 인프라 구축, 농어업 재정 지원, 관광 활성화, 산림청 및 소방청 진화장비 현대화 예산 등은 사실상 소외되었다. 민주당은 이들 분야에 대한 대폭 증액을 추진하며, "민생 회복을 위한 필수 항목이 빠진 추경은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명확히 하고 있다.
정치 일정의 부담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은 추경 심사를 조속히 개시할 계획이다. 상임위 논의가 곧 시작되며, 예산 증액 논의는 다음 주 예결위 본심사로 넘어갈 예정이다. 허영 간사는 “늦장 편성해놓고 신속 처리를 요구하는 정부의 태도는 무책임하다”며 “국회는 국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구조 개입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치적 수사 대신, 예산으로 말할 시간
2025년 조기 대선을 6주 앞둔 상황에서 재정정책은 민생 회복과 정치 회복의 접점에 서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예산 심사를 단순한 정치 공방으로 소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추경은 국민의 삶을 바꾸는 실질적 수단이며, 조기 선거 이전이라 하더라도 정치권은 경제의 회복 조건을 성실히 마련해야 한다.
국민은 정치권이 민생을 소모품처럼 다루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진정한 회복은 말이 아닌 예산으로 증명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