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트렌드②] 통상외교의 백기, 권한대행 체제의 위험한 모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외교의 정당성을 설명할 수 있는가

2025-04-22     최기형 기자
박찬대 대표, 외교는 기술이 아니라 정당성의 문제.  사진=더불어민주당, K trendy NEWS DB ⓒ케이 트렌디뉴스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KtN 최기형기자] 2025년 4월 24일, 한미 고위급 통상협상이 워싱턴에서 개최된다. 협상 테이블에는 대미 수출 관세, 방위비 분담, 무역장벽 조정 등 민감한 현안이 올려질 예정이다. 한국 측 협상단은 최상목 경제부총리와 안덕근 산업부 장관으로 구성되었다.

외교적 기술이나 협상 역량이 아닌, 이번 회담의 책임 주체가 정치권에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이 파면된 상황에서, 권한대행 체제가 국가의 중장기 통상 전략을 확정지을 권한이 있는가에 대한 법적·정치적 정당성의 논란이다.

정보노출 이후의 협상…무력화된 교섭력

한덕수 총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 이후, 외신 인터뷰를 통해 방위비와 관세 문제에 대한 한국 측 입장을 일정 부분 공개했다. 통화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의 협상을 “원스톱 쇼핑”으로 표현하며, 사실상 양국 간 협상 카드가 이미 일부 노출되었음을 시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해당 발언들이 협상의 전략적 기밀을 해친다고 비판하며, 현 시점에서의 협상 진행 자체를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협상의 정당성 이전에, 교섭의 실효성과 결과의 수용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지적이다.

권한대행 체제와 외교결정권의 법적 한계

헌법 제71조는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을 ‘현상 유지’에 한정하고 있다. 고도의 정치 행위이자 외교적 비가역성을 동반하는 통상 협정 체결이나 방위비 분담 조건 설정은, 본질적으로 선출 권력의 정당성을 기반으로 이행되어야 한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40일 뒤 정권이 교체되는 상황에서, 외교적 사안의 최종 결정은 다음 정부가 담당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 권한대행이 협상의 개시 주체가 될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을 밀어붙이는 것은 권한의 남용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제2의 윤석열’이라는 프레임과 현실의 간극

한덕수 총리에 대한 비판이 ‘제2의 윤석열’이라는 정치적 프레임으로 연결되는 이유는, 통치 양식의 연속성 때문이다. 파면된 정권의 인사 및 정책 기조가 지속되고 있으며, 통상 협상·공공기관 인사·예산 집행 등에서 대통령 권한대행이 실질적 최고 권력자로서 행동하고 있다는 판단이 정치권에 확산되고 있다.

건강보험공단 상임감사, 캠코 사장 인선 등 주요 공공기관 수장 교체가 정권 교체 직전 시점에서 강행되는 것도, 권한대행 체제의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증폭시켰다. 조계원 원내부대표는 “정권의 교체를 앞둔 행정부가 정책 연속성을 보장받지 못한 인사를 강행하는 것은 행정의 신뢰를 훼손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외교적 실효성과 정당성, 모두의 책임

통상 협상은 단기간에 타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대미 관세 협정과 방위비 분담 협상은 수년에 걸쳐 산업 구조와 안보 전략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고위험 영역이다. 통상 정책의 방향성과 정무적 책임은 분리될 수 없으며, 책임 없는 협상은 외교의 신뢰 기반을 약화시킨다.

박찬대 대표는 “외교는 기술이 아니라 정당성의 문제이며, 통상은 대국민 설명 책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밝혔다. 외교는 정권의 도구가 아니라 국가의 장기적 이익을 위한 공적 영역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한대행 체제가 이를 독자적으로 결정하는 데 따르는 민주주의적 한계는 명확하다.

통상외교, 자제와 절제가 필요한 시기

정권이 과도기 국면에 있는 상황에서, 외교적 협상은 협상 그 자체보다 더 신중한 절제가 요구된다. 교섭력의 문제 이전에, 협상 내용이 국민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국제사회는 협상 당사국의 정치 구조를 관찰하고, 그 구조에서 발현되는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근거로 협상 전략을 설정한다. 국내 정치의 정당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외교적 약속을 남발할 경우, 협상 파트너에게도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다.

한덕수 총리는 외교의 기술자 이전에 헌정 체계의 관리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야심이 아니라 절제이며, 당장의 결과보다 신뢰 가능한 외교의 질서를 복원하는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