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이후, 한국 자본주의는 어디로 향하는가
민병덕 의원, “점주의 돈으로 연명하는 방식” 사모펀드 모델의 한계와 유통 생태계의 붕괴… 홈플러스 사태가 드러낸 공공성의 공백
[KtN 최기형기자] 유통은 단순한 상품 이동의 경로가 아니다. 수천 개 협력업체의 생산력, 수만 명 노동자의 생계, 지역경제의 혈류가 교차하는 복합적 생태계다. 그러나 사모펀드가 이 구조를 ‘회수 가능한 자산군’으로 재편할 때, 생태는 해체된다. 홈플러스 사태는 지금 한국 유통 자본주의가 어느 임계점을 통과했는지를 통렬하게 보여주는 신호다.
회생이라는 언어가 숨긴 것, 자산 운용이 아닌 생존의 유린
2025년 3월 4일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홈플러스는, 회생계획서 제출 기한인 6월 12일을 앞두고 여전히 구체적인 회생 방안을 외부에 밝히지 않고 있다. 회계적 정의에 따라 채무조정과 사업 구조조정 계획이 요구되는 시점이지만, MBK 파트너스는 공식 입장을 유보한 채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채권자와 노동자, 납품업체, 입점업주 등 이해관계자들의 불확실성은 날로 가중되고 있으며, 이를 둘러싼 침묵은 단순한 무대응이 아니라 사모펀드 자본의 구조적 속성을 드러내고 있다.
MBK 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인수 이후 10년간 매장 부동산을 순차적으로 매각하며 자산을 현금화해 왔다. 이와 병행해 본사 중심의 정산 구조를 고수하며, 점주의 월매출을 선입금 방식으로 회수하고 수수료를 제외한 금액만을 재입금하는 체계를 강제했다. 이 방식은 점주와 납품업체의 유동성을 본사 자금 흐름으로 흡수하는 구조로, 외부 자금 조달 없이 내부 이해관계자의 현금 흐름을 담보로 자본을 운용해온 셈이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장은 이 같은 구조를 “점주의 돈으로 연명하는 방식”이라 지적했다. 단기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비정상적 정산 방식은 결국 현장에 고스란히 리스크를 전가하며, ‘경영’이 아니라 ‘현금화’에 초점을 맞춘 구조임을 드러낸다.
유통의 공공성, 자본의 수익률에 잠식되다
마트는 생필품 유통의 전선이다. 매대에 우유가 빠진다는 것은 공급망 단절의 신호이자, 지역 소비자와 생산자의 연결고리가 끊긴다는 경고다. 경기 안양 홈플러스 매장을 찾은 민병덕 의원이 목격한 “팔지도 못할 물건으로 채워진 진열대”는 단순한 경영 부실이 아니라, 유통이 더 이상 ‘공공적 시스템’으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유통의 공공성이란, 공급 안정성과 접근성, 가격 형성의 투명성이 보장될 때 성립된다. 그러나 MBK의 운영 모델은 이 세 요소를 모두 훼손하고 있다. 납품업체는 대금 회수 불확실성에 시달리고, 점주는 수익 구조 붕괴로 매장을 정리하고 있으며, 소비자는 품목 축소와 가격 불안정이라는 이중 타격을 받고 있다.
홈플러스 입점업주협의회 김병국 회장이 언급한 “무분별한 폐점과 매각”은 단지 영업 철수가 아니라, 지역상권 기반의 연쇄 해체를 의미한다. 유통의 위기가 곧 지역경제의 구조적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산업 이슈가 아닌 국가 경제 차원의 사안이다.
‘자본의 권리’만 있고 ‘공공의 책임’은 부재한 체계
문제의 핵심은 MBK가 법적으로 투자자인 동시에, 사실상 유통 산업의 핵심 운영 주체라는 점이다. 기업의 경영성과는 이미 악화된 지 오래지만, MBK는 회생 절차라는 법적 보호막 안에서 자산 매각과 비용절감 중심의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사모펀드 자본은 ‘소유’의 권리를 누리면서도 ‘운영’의 책임은 회피하는 구조적 특성을 가진다. 이러한 자본이 공급망·노동시장·소비구조를 지배할 때, 규제기관과 정치권이 실질적 감시와 통제를 수행하지 못하면, 기업 하나의 실패가 곧 산업 생태계 전체의 와해로 이어지게 된다.
마트노조가 정무위원회에 제안한 청문회 개최 요구는 단순히 김병주 회장을 부르는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모펀드 자본이 공공의 통제 장치 안에서 검증되고 책임질 수 있는 구조로 재편되어야 함을 뜻한다. 지금 국회는 사모펀드 자본의 공공적 지위를 명확히 할 입법적, 제도적 대응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유통 산업의 지속 가능성, ‘자본 감시’가 출발점이다
홈플러스 사태는 단순한 기업 위기를 넘어, 유통 산업 전반이 자본 중심 구조에 포획된 현실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사모펀드의 고수익·단기 회수 전략은 유통 생태계의 신뢰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으며, 회생이라는 명목 아래 실질적인 해체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와 국회는 조정자에 머물지 않고, 유통산업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제도적 방향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 사모펀드에 대한 실질적 규제, 공공 회생관리 체계 구축, 공급망 기반 기업에 대한 별도 통제 기준 마련은 지금의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정책 과제다.
한국 경제는 고수익 자본의 효율성을 일방적으로 허용한 결과로, 사회적 신뢰와 생존 기반이 흔들리는 현실에 직면해 있다. 자본이 공공 질서 안에서 작동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동일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